[충청매일]  “청풍도가 김주태 놈이 다급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놈이 그 정도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최풍원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북진여각도 지금 급하게 써야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청풍도가를 없애버려야겠지만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 내가 가진 힘을 무리하게 쓰다가는 오히려 역으로 당할 수 있었다. 상대로부터 공격을 받고 가만히 있을 멍텅구리는 없었다. 공격을 할 때는 상대로부터 나올 반격도 염두해 두고 공격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큰 집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가지부터 쳐나가다 보면 몸통도 먹을 게 없으니 말라죽지 않겠습니까?”

봉화수가 서창 마차쟁이 차대길 노인이 했던 말에 살을 붙여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다.

“얘기로는 그렇지. 잘못하다가는 큰 집이 무너지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지. 팔규도 그렇고 여러 장꾼들을 통해 들어오는 얘기로는 아직도 청풍도가 창고에는 상당량의 물산들이 쌓여 있다는 거여.”

최풍원은 염탐꾼들을 통해 여러 정보들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왜 청풍도가에서 저렇게 난리를 치고 있을까요?”

봉화수는 창고에 물건을 쌓아놓고도 그토록 고을민들을 닦달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가. 김주태의 욕심보따리도 있고, 당장 한양으로 보내고 청풍관아 창고를 채워놓으려면 그것 같고는 부족한 거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눈에 핏발을 세우고 그 발광을 떠는 게지!”

“어르신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요?”

“자네는 지난번에 내가 지시한 대로 각 임방을 새로 단장하게! 그리고 객주들에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철저하게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가는 물산들을 막도록 단속해 해주게. 그리고 받아놓은 물산들을 여각으로 입고시키면 그에 대한 것은 곧바로 돈이든 곡물이든 물건이든 필요한 것으로 즉각 지불해주겠다고 전하게!”

“그러면 임방이나 장에까지 나올 형편도 되지 않는 골타구니 사람들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요!”

봉화수는 꼬부랑재에서 죽은 응출이네가 떠올라 최풍원에게 자꾸 매달렸다.

“지금 우리 여각에서 거기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네! ”

최풍원이 단호하게 잘랐다.

“…….”

최풍원의 성격을 알기에 봉화수도 더 이상 자기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큰일을 도모할 때는 작은 것은 버려야 하네.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네. 그러다가는 힘이 흩어져 제대로 집중할 수 없지 않겠는가. 일단 일부분의 희생을 감내하더라도 큰일을 마무리하고 나중에 소소한 일을 챙기는 것이 순서일세. 그게 장차 그런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일세!”

“그렇다면 어르신, 어떤 복안을 가지고 계십니까?”

봉화수가 최풍원에게 청풍도가를 무너뜨릴 방법을 물었다.

“여각과 임방이 힘을 합쳐 동시에 청풍도가를 공략하세!”

“여각과 임방이 뭘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아가 얘기한 것처럼 자네는 각 임방을 돌며 객주들에게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가는 무란들을 중간에서 막고, 나는 청풍도가 창고에 쟁여있는 물산과 물건들을 없애버릴 방도를 찾아보겠네.”

“청풍도가 창고에 있는 그것들을 어떻게 없앤다는 말씀입니까?”

“수를 써야지!”

최풍원이 어떤 방법을 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수가 어떤 수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최풍원은 지금 북진여각에 와있는 충주 윤 객주 상전 우갑 노인과 청풍도가에 일격을 가할 묘안을 이미 한참 전부터 짜고 있었다.

“어르신, 장석이가 청풍에서 돌아오는 대로 자초지종을 일러주고 서창으로 보내고 저도 바로 임방을 돌아보러 떠나겠습니다. 그리고 행수 어르신의 분부도 전하겠습니다.”

봉화수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최풍원이 도모하고 있는 방법에 대해 굳이 묻지 않았다. 비밀이라는 것이 때로는 자기 자신 모르게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장사를 하며 은연 중 몸에 밴 습성이기도 했다. 봉화수 역시 장사를 하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꼭 지켜야 할 비밀은 자신만 가슴 속에 묻어두었다. 그것이 상대를 신뢰하지 못해서 하는 행동이라며, 뭇사람들은 장사꾼을 제 부모형제도 속이는 후레 놈들이라 욕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비밀 속에 밥이 들어 있었다. 그 비밀이 새어나가면 손해를 입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당장 가솔들 입을 건사할 수 없었다. 장사꾼들이라면 서로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친한 친구가 자신을 속였다 하더라도 그냥 묻어가는 것이 오래된 상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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