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북진으로 돌아가면 여각에 마땅한 사람을 물색해 보겠습니다.”

봉화수는 장팔규를 점찍고 있었다. 송계 구레골에서 최풍원을 따라왔던 장팔규는 아직도 북진여각에서 특별하게 맡은 일 없이 이것저것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힘도 세고 몸도 재빨라서 마차 만드는 일에는 적격일 것이었다. 둥글둥글 성격도 모나지 않아 장팔규라면 차대길 노인의 비위도 잘 맞춰가며 기술을 배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약조 꼭 지키거라!”

차대길 노인이 봉화수에게 당부했다.

“마차를 지으려면 어르신 혼자 힘에 부칠 테니 제가 돌아가는 대로 사람을 하나 꼭 보내겠습니다. 보시고 싹수가 있겠다 싶으면 어르신 기술을 전수시켜 주십시오. 어르신께서 잘 좀 돌봐주세요!”

봉화수도 차대길 노인에게 부탁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살다보니 기술보다도 중한 것 사람이여. 사람이 기술을 배우는 거지 기술이 사람을 가르치는 게 아녀. 이적지 마차를 만들며 거쳐 간 사람들이 숱하지만 이래저래 서로 맴이 맞지 않아 중도에 떠나간 사람들이 거지반이여. 나 역시 젊어서는 내 기술이 최고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을 종 부리듯 하지 않았었겠나. 그깟 기술이 뭐라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뭘 하든 사람이 그중 중한 거여! 암 그렇구 말구!”

차대길 노인이 몇 번이고 세상에서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지만, 이번에도 봉화수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확연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어르신! 어르신! 동네에 큰일이 났습니다여!”

그때 술을 받으러간다며 나갔던 황칠규가 급하게 뛰어들어오며 소리쳤다.

“무슨 일인데 그리 숨 넘어 가는 소리를 하는가?”

“덕실 꼬부랑재에서 줄초상이 났대유!”

“꼬부랑재 뉘 집에?”

“응출이 내외가 뒤켠 소낭구에 목을 맸다는구먼유!”

“워짠 일루?”

“저기 삼거리 주막집에 갔더니 하는 말이, 얼마 전 청풍도가 놈들이 들이닥쳐 분탕질을 치고 간 다음 그랬다네유!”

“왜?”

“왜겠슈! 꿔먹은 양식이나 도지를 독촉하러 왔겠지유. 평상시 같으면 해도 뜨기 전부터 내외가 집 앞 밭에 나와 꿇어 엎드려 일을 할 텐데 요새 보이지 않더라는 거유. 별일이야 있겠는가 싶어 그냥 있었는데, 사나흘이 지나도 기척이 없어 가봤더니 그 지경이더라네유. 그래서 동내 사람들이 응출이네 집으로 모두들 달려갔구먼유. 지두 얼른 그리루 가봐야겄슈!”

황칠규가 들어와 이야기를 전하자마자 다시 바쁘게 밖으로 나갔다.

“청풍도가 놈들, 도가가 아니라 도살장이구먼! 워째 사람들을 호달궈도 그리 끝간데 없이 호달굴 수 있단 말인가. 그놈들이 인간 백정이여!”

차대길 노인이 푸념을 해댔다.

“청풍도가에서 그 골짜기까지 와서 그런단 말입니까?”

“청풍 관내에서 그놈들 안 가는 데가 어디 있는가? 돈 나오는 구멍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어떻게라도 알궈 먹으려고 눈깔에 불을 키고 다니지. 월악산 영봉 꼭대기라도 돈만 나온다면 그 빈장도 기어 올라갈 놈들이여!”

“여기도 청풍도가에 코를 꿰인 집들이 많습니까?”

“이르다 뿐인가? 이 동네도 농사 짓기 좋은 저런 밭들은 거지반 도가 김주태 땅이고, 얼마 전부터는 저기 산속 화전 밭까지 조사를 해갔구먼. 땅만 그런 게 아녀. 김주태에게 꿔먹은 양식에 외상으로 갖다 쓴 물건에다 이것저것 다 치면 안 걸린 집이 없을거구먼. 그러니 관아에서 잡으러오는 것보다도 도가에서 나온다고 하면 그걸 더 무서워하지. 호랑이에게 물렸다가 살아날 수는 있어도 그놈들한테 한 번 물리면 죽어도 못 풀려나. 지독한 놈들!”

“어르신은 괜찮으신가요?”

“마차를 만들려면 나무만 필요하겠는가. 이것도 온갖 것들이 쓰이지. 그걸 청풍도가에서 받아다 쓰는 게 많았지. 그러다보니 당연히 나도 코가 꼬였었지.”

“그래, 어떻게 풀려놨습니까?”

“한 번 꼬가 꼬이고 나니 아무리 부지런하게 일을 해도 이것저것 갚고 나면 내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게 없어. 그래서 마차를 두 대 바치고 청산을 했지.”

“마차 두 대를요?”

“벌래는 한 대면 갚을 수 있는 빚인데, 빚을 갚으려한다고 하니까 이러저런 것을 몽땅 끌어다 붙여 마차 값을 반으로 후려치더라구. 그래서 두 대를 만들어주고 끝을 냈지. 아귀도 그놈들 같은 아귀는 없을 거여!”

차대길 노인이 진저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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