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과거를 돌아보며 회상하는 것도 걱정거리 없는 등 따신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힘겨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에게는 뒤를 돌아다볼 겨를도 없었다. 말하기 좋아서 사람들은 세상에 걱정거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지 않으면 힘겨운 삶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당장 눈앞이 캄캄한 사람들에게 회상은 사치가 아닐 수 없었다. 마차쟁이 차대길 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대인께서도 이 일을 하셨군요?”

“그랬지. 열여섯 되던 해 선친이 돌아가시고 이제껏 이 일을 맡아 했으니 그걸 다 합치면 꽤 되겄지. 그동안 만든 달구지만 따져 봐도 엄청 나겠지. 그게 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어.”

“어디선가 사람들 등짐을 면해주며 요긴하게 쓰이고 있겠지요.”

“그러긴 하겠지만, 우마들한테는 못할 일을 너무 많이 한 게지.”

“우마야 그런 일을 하려고 난 것 아니겠어요. 어르신은 우마한테도 마음이 가시는가 봅니다.”

“왜아니 그렇겠는가. 내가 달구지를 만들어 밥을 먹고는 살았지만 소나 말이 없었다면 그게 무슨 소용 있었겠는가. 또 내가 달구지를 만들지 않았다면 숫한 우마들이 무거운 짐을 끌지 않았을 것 아니겠느냐. 아마도 여럿 우마들이 날 원망할거구먼.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론 짠하고 그렇다네.”

차대길 노인의 우마에 대한 그런 마음은 진정인 것 같았다.

“축생이야 그래 쓰이려고 난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이나 축생이나 다를 바 있는가?”

“어떻게 사람과 축생이 같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이 축생을 부리는 거나, 부자나 양반이 우리를 부리는 거나 다를 게 뭔가. 부리는 이들이 보면 우리도 축생 한가지지!”

“양반이 보면 우리도 축생이라고요? 그리 생각하면 그도 그렇군요. 그래도 뭐가 좀 이상합니다.”

봉화수가 차대길 노인의 말을 들으며 뭔가 가슴을 파고드는 울림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연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내 밥 먹으려고 남의 등골 빼는 일은 이제 그만 할 생각이라네. 평생 우마 등골을 너무 빼먹었다네. 이제 우마를 괴롭히는 달구지는 그만 끝을 내야겄네.”

“지들 일은 어쩌시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뜬금없는 차대길 노인의 말에 봉화수가 깜짝 놀랐다.

“북진여각 일은 끝내고 말아야지. 이번 달구지 작업은 한평생 갈고 닦은 내 기술을 전부 쏟아 부어 만들어주겠네! 그러니 염려 말게!”

차대길 노인이 놀란 봉화수의 표정을 보며 웃었다.

“어르신 달구지 만드는 명성이 인근에서는 최고라고 뜨르르 합니다요!”

“그건 기분 좋으라고 공중 허는 소리고, 늙으면 얼렁 물러나야지. 그래야 주책 소릴 안 듣는 거여. 달구지 만드는 것도 이젠 힘에 부쳐.”

“아예 그만 둔다면 어르신 기술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요?”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면 늙은이들은 물러나야지. 나도 이대로 닫아버린다는 것이 아쉽지. 그런데 물려주려고 해도 배울라고 허는 놈이 없으니 어쩌겄나.”

“달구지 값을 갚지 못하면 제가 여기 와서 배우겠습니다.”

봉화수가 차대길 노인에게 농 섞인 투로 약속을 했다.

“관상이나 배포를 보아하니 너는 여기와 달구지나 만들며 처박혀 있을 놈이 아니다. 사람은 제각각 지 할 일이 있는 법이다. 넌, 여각에 가서 더 큰 일을 하거라.”

“그런데 아까는 왜 제게 여기 와서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까요?”

“돈 받아내려면 그 수밖에 더 있느냐? 그래도 돈은 꼭 가져와야 하느니라. 그거건 농이고 니 눔 됨됨이를 보려고 그리 하지 않았겠느냐. 이 나이가 되도록 평생 달구지를 만들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이놈이 싹수가 있겠는가 없겠는가를 보게 되더구나. 오래 살다보면 사람도 짐승도 그런 싹이 보인단다. 뭘 하더라도 싹수가 있어야지!”

“어르신이 보기에 저는 싹수가 있어 보입니까?”

“돈을 가져오면 싹수가 있는 놈이겠지!”

차대길 노인의 농에 두 사람이 박장대소했다.

“어르신, 제가 이 일을 배울만한 사람을 하나 소개 올릴까요?”

“그럴 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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