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조문객도 모두 떠나고 상주와 가족들도 잠자리에 들었다. 적막하다. 애초에 인간은 외로운 존재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늦은 밤, 후배가 찾아왔다. 먼 길을 달려온 피곤함이 얼굴에 가득했다. 늦게 온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후배를 보며, 나도 미안했다.

싸늘한 육체만 남은 울 엄마를 조문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었을까. 단체의 사무국장이란 직책 때문일까. 과분하게 많은 이의 위로를 받았다. 시인, 화가, 배우, 가수 등 모두 가난한 이들뿐이다. 그러나 돈보다 가치 있는 의미를 추구하는 이들이며, 그 가치를 위해 함께 걸어가는 동료들이다.

오랜만에 후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가자 해놓고 주위를 살펴보지도 않고 말없이 걷기만 한 건 아니었는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후배가 미안해하면서 건넨 봉투 속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가 세상 어떤 가치보다 눈물 나게 고귀해 보였다.

나는 안다. 이들이 얼마나 힘들고 치열하게 사는지를, 세상에서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예술, 예술가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나는 조금은 안다. 그가 건넨 돈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 아니겠는가. 사람보다 돈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예술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힘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위로만으로는 험난한 여정에 힘이 되지 않는 것을 안다. 당장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안다. 그래도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함께 한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신뢰와 믿음, 배려와 이해를 돈의 가치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이 함께한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가치관의 충돌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고 오해와 갈등이 쌓이고 이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단절로 이어진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길 바라는 독단과 편 가르기를 통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다.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코로나 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예술가들의 생각이다. 나이는 먹어가고 자식들은 커가고 돈 들어갈 때는 많아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선택한 길 한 가운데에 오도 가도 못하고 서 있는 이의 위태로운 그림자,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이의 심정은 어떠할까.

나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일까. 내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 때문에 시를 쓰고 있는가. 어느 날 내 삶의 목표가 보이지 않을 때, 내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을 때, 나는 누구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까. 반대로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예술가를 배려하는 사회보장제도도 중요하지만, 예술가 스스로가 위로받고 위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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