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어르신이 시키시면 무슨 일이라도 할 테니 젊은 놈 한번 살려주시오!”

“무슨 일이라도 하겠단 말이지?”

“예!”

“그럼 내가 시키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하겠단 말이지?”

“사람이 되어서 남의 도움을 받았으면 어떻게 갚아야하는 것이 도리 아니겠습니까요. 만약 반년 안에 달구지 값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라도 어르신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봉화수가 다짐했다.

“반 년 안에 돈을 갚는다면 달구지 값은 지금 나가는 금에 주겠다. 그렇지만 만약 네가 약조한 것을 어그러뜨리면 너는 내 밑에 와서 평생 마차 짓는 일을 해야 할게다! 알겠느냐?”

“어르신, 어르신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봉화수가 차대길 노인 무릎 앞에 꿇어앉아 넙죽 절을 했다.

“내, 이 나이가 되도록 마차쟁이를 해왔다만, 여적지 너 같은 놈은 첨 봤다. 도대체 돈도 한 푼 없는 놈이 무신 똥배짱이냐?”

차대길 노인이 봉화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말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요.”

최풍원이 연신 머리를 굽실거렸다.

“어르신, 여기 화수야 뭘 어찌할 수 있었겠습니까요. 여각 대행수에게 소임을 받고 왔으니 어떻게든 일을 성사시켜야지요.”

이제껏 잠자코 있던 황칠규가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끼어들었다.

“하기야, 나도 북진여각 최 행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니 청을 들어주기기는 했지만, 자네 같으면 자네 상전이 달구지를 그것도 다섯 대나 부탁하며 알몸으로 보내면 어떻게 했겠는가?”

“저야 냅다 줄행랑을 놓았겠습니다요!”

황칠규가 도망치는 흉내를 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네. 칠규 자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했을걸세! 그런데 이 젊은 친구는 대단하지 않은가? 아무리 상전에게 소임을 받고 왔다하더라도 빈손에다 몇 번 거절을 당하면 포기를 하고 돌아설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이 젊은이는 내 일처럼 달려들어 근기 있게 매달리니 그 마음이 매우 고맙지 아니한가? 내 일이든, 남의 일이든 사람은 본심을 써야하는 벱이여. 이 사람, 자네 돈을 갚지 못하면 나와 일을 해야 하네!”

봉화수를 바라보는 차대길 노인의 표정이 흡족해보였다.

“반드시 갚겠습니다!”

“달구지는 만들어줄 테니 술이나 한 잔 받아 오게! 달구지 값은 없어도 탁주 한 사발 받아올 돈은 있겠지?”

“예, 어르신!”

“농이네. 어쨌든 내 집을 찾아온 객인데, 객한테 술을 얻어먹는 법은 없네!”

차대길 노인이 손을 내저으며 일어서려는 봉화수를 말렸다.

“어르신은 우리 여각을 위해 달구지를 만들어주시는데, 술은 지가 받아 오겠습니다요!”

말릴 새도 없이 황칠규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르신, 제 청을 들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반드시 은공을 갚겠습니다!”

봉화수가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표했다.

“거저 해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받고 해주는 일인데 그렇게까지 고마워할 필요 없네! 내가 그리 결심을 한 것은 자네의 마음 씀씀이가 본심이여서기도 하지만 여각 최 행수가 우리 고을사람들에게 베푼 공덕을 생각했기 때문도 있다네. 고을민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북진여각에서 양식을 풀어 도와준 것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그런 여각이 어렵다는 데 당연히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저희 대행수를 아십니까?”

“수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그런 양반을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그런 주인이 있으니 자네 같은 사람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지. 저 어려울 때는 남의 것 얻어먹어놓고, 남 어려울 때는 나 몰라라 외면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차대길 노인은 고개까지 끄떡이며 자신의 말에 수긍했다.

“어르신께선 이 일을 얼마나 하셨는지요?”

“글쎄다. 선친 때부터 이 일을 했으니 얼마나 됐을꼬.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여기를 놀이터 삼아 이 나이가 되도록 여기에 있었으니 이젠 손을 털 때도 됐지. 오래된 것보다도 어릴 때부터 눈만 뜨면 이 마당에서 매일처럼 해온 터라 내가 달구지 같고 달구지가 나 같구먼!”

차대길 노인이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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