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관음사는 매우 오래된 절이지만 처음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니다. 후기신라 때 창건한 이름도 아름다운 계향사(桂香寺)의 맥을 잇고 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조선 중기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43년 인봉스님이 석등에 불을 밝혀 불법의 향기를 이어 청주시내 중생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였다. 우암산 관음사가 대한불교조계종 법주사 말사로서 청주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83년 이두(二斗)스님께서 주지로 부임하면서부터이다. 이두스님은 퇴락한 법당, 요사를 헐고 화려한 고려양식의 40평 목조 극락보전을 건립하고, 천불전, 계월사, 삼성각 등 중창불사를 거듭하여 도량의 면모를 크게 개선했다. 그래서 관음사는 수행과 포교의 중심사찰로 거듭나게 되었다.

연세가 많으신 이두스님은 바로 얼마 전에 열반에 드셨다. 이두 스님은 내가 내륙문학회 회장일 때까지 가끔 모임에 나오시던 문학 동인이시다. 시조를 쓰셨는데 나오셔도 별 말씀이 없이 빙긋빙긋 웃으시다가 속세의 음식을 몇 술 뜨고는 말없이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런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렇게 조용하시던 시인 스님께서 관음사 부흥을 위해 큰일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후에 듣고 부처님의 원력의 크기는 가늠할 수가 없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관음사는 신도가 많고 각종 신도회가 조직적으로 잘 움직인다고 들었다. 몇 해 전 찬불가 작곡 발표회도 열었는데 주지 스님이 직접 찬불가를 작사한 것도 많아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친구 내외분이 출연하는 바람에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런 모임이 잘되는 관음사가 부러웠다. 올라와서 직접 보니 조금 비좁고 갑갑한 면은 있으나 생명력 넘치는 모습에 흐뭇했다.

관음사는 와우산 제 3봉 아래에 있다. 흥덕사지가 있는 나지막한 양병산 산봉우리를 안산으로 하고 그 사이에 무심천이 청주시내를 감돌아 흐른다. 밤에는 시가지가 온통 부처님의 세계처럼 아름다운 꽃밭으로 변한다. 중생이 밝힌 전기불이 미리내가 되어 흐른다. 아름다운 산중에서 참선하며 불법을 깨우칠 수도 있겠지만, 속세의 이렇게 아름다운 불빛을 보며 깨우치는 불법도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올라간 길을 되짚어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종교와 신앙과 나의 이념에 대하여 말이다. 뭔지 모르겠다. 대학 캠퍼스에 내려오니 학생들의 생기가 새롭다. 머리 긴 여대생들이 책을 끼고 걷는 모습, 반바지만 입은 남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달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런 자유가 부럽다. 젊음이 부럽다. 그러나 젊음을 재는 척도는 나이가 절대적인 아닐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변하는 시대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새로운 책을 읽고 있는지, 자신을 위해서 새로운 일을 찾아 추구하고 있는지 같은 것들도 젊음을 재는 척도가 될 것이다.

관음사는 청주의 진산인 와우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심을 지나 몇 분만 걸어도 조용하고 아늑한 도량을 만날 수 있다. 

청주읍성, 당산토성, 와우산토성에서 상당산성으로 이어지는 청주나성과 보살사, 관음사, 용화사로 연결되는 청주의 산성과 사찰이 연계되면 현대를 다시 생각하는 훌륭한 역사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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