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렇습니다!”

“달구지 값이 얼만지 알구나 허는 소린가?”

“알고 있습니다요.”

“상머슴도 뼛골 빠지게 삼 년은 일해야 받는 쇠경이여.”

“아는구먼요.”

“그런데 한 대도 아니고 다섯 대씩이나, 그것도 그냥 해 달래? 맹랑한 놈이로군!”

“그냥 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당장 드릴 돈이 없으니 우선 달구지부터 만들어주시면 추수 후에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추수 뒤에? 지금 당장 쓸 일이 다반산데? 그리고 달구지는 맨손으로 만드는가, 그것도 다섯 대 씩이나. 달구지도 만들려면 이것저것 사들일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그걸 다 나한테 하란 말인가?”

차대길 노인이 어이없어 했다.

“그럼 외상으로 하는 대신 달구지 값의 곱절을 쳐드리겠습니다!”

봉화수가 수레 값의 배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지금 당장 돈이 없어 외상 하는 처지에 반 년 뒤에 무슨 돈이 갑자기 생기고, 게다가 수레 값의 배를 내놓겠다는 말이냐?”

차대길 노인은 점점 못 믿겠다는 투였다.

“어르신, 꼭 갚을 테니 청을 들어주시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다보니 뭔 일은 안 겪었겠는가. 그런데 사람이 살며 그중 젤루 그짓말을 많이 하는 게 뭔 중 아는가? 그건 돈이여. 급할 때는 뭔 말은 못하겠는가. 허지만서두 제 욕심을 차리고 나면 급했을 때를 싹 잊어버리지. 그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며 오리발이지. 그게 돈이여. 그래서 돈은 받을 수 있을 때 제 때 받아야하는 거여. 안 그러면 낯붉히고 언성 높아지고 사람 잃고 속병 생기고 물건 잃는 법이여. 그런 일 안 만들려면 애당초 첨부터 확실한 게 좋지!”

“그리고 이걸로 약조를 하겠습니다!”

봉화수가 품속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이게 뭔가?”

“즈이 여각 대행수께서 써준 어험입니다!”

봉화수가 최풍원이 써준 어험을 차대길 노인에게 건냈다.

“어험? 이깟 종이 쪼가리가 무슨 소용인가?”

차대길 노인이 봉투를 열어 어험을 꺼내들더니 시답잖다는 듯 도로 건내 주었다.

“어르신, 이건 돈이나 마찬가지유. 이건 큰 장사꾼들 사이에 오가는 증표인데 이걸 가지고 가면 어떤 물건도 살 수 있단 말이요!”

황칠규가 어험에 대해 설명을 했다.

“낸, 그런 것 모른다. 이깟 것보단 당장 먹을 수 있는 쌀 한 되박이 더 좋다. 그러니 난 이딴 것 필요 없다! 내가 이걸 갖다 뭐에 써먹겠는가 말이다.”

그건 차대길 노인의 말이 옳았다.

어험은 큰 장사를 하는 거상들 사이에 신용으로 오가는 것이었다. 대량의 물산을 매입하려고 하는데 당장 돈이 없을 경우 어험을 써주고 잠시 지불을 미루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골에서 마차를 만드는 노인이 어험을 받아 어디에 써먹을 곳이 있겠는가. 차대길 노인에게 어험은 개발에 편자나 다름없었다.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어험을 써준 것은 어떤 말도 먹히지 않았을 때 마지막 방법으로 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차대길 노인에게는 그 어떤 방법도 먹히질 않았다. 어떻게 하든 이번 일을 해결하고 북진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마차를 만들어줄 차대길 노인이 완강하니 봉화수는 난감하기만 했다.

“어르신, 반 년 뒤 곱절의 달구지 값을 처서 드리고 어험도 맡길 테니, 어르신께서 어떻게 편의를 봐주십시오!”

“허허 그것 참! 받지도 못할 돈, 값만 비싸게 올리면 뭣 허나? 만약 반년 뒤까지 달구지 값을 갚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럴 리 없습니다. 반드시 갚습니다.”

“사람이 급할 때는 뭐든 쉽게 약속을 허지. 그래도 만약 지키지 못한다면 어쩔 셈이냐는 말이다!”

“목숨을 내놓겠습니다요!”

“나한테 니 놈 목숨이 뭐에 소용허냐? 당장 배를 불릴 쌀 한 섬만도 못 허지. 그런 허황한 약조를 믿고 달구지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가거라!”

차대길 노인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달구지 값이다. 특별히 네놈 배짱이 맘에 들어 대당 한 섬씩 깎아줄 테니 돈을 가져오너라!”

“지금은 돈이 없습니다.”

“그러면 얘기는 끝난 것 아니겠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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