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거대한 거미-엄마, 모성에 대한 재현 문법을 무너뜨리다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거대한 거미-엄마, 모성에 대한 재현 문법을 무너뜨리다
  • 충청매일
  • 승인 2020.03.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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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모성: 강요된 이념
(5)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엄마
초대형 거미 조각 작품 ‘마망’ 한국 등 전세계 곳곳 설치
다리 끝에 이어 붙은 날카로운 ‘낫’ 생생한 현실감 부여
알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부풀려 상대 겁주는 형상 눈길
거대하고 기괴한 거미에게서 발견한 모성의 감정 표현
루이스 부르주아 “거미는 나의 어머니께 바치는 송시”
루이스 부르주아 ‘마망’ 1999(왼쪽부터), ‘마망’의 세부. 루이스 부르주아 ‘여자의 집’ 1947.
루이스 부르주아 ‘마망’ 1999(왼쪽부터), ‘마망’의 세부. 루이스 부르주아 ‘여자의 집’ 1947.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세계 여기저기에서, 우리나라의 한 미술관에서도 초대형 조각 작품,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Maman)’을 볼 수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프랑스 태생 여성 미술가이고, ‘마망(maman)’은 프랑스어로 ‘엄마’이다. 거미의 형상을 하고 엄마라는 제목을 단 이 작품들은 1994년 미국 브루클린 미술관을 시작으로 해 영국 테이트 모던, 뉴욕 록펠러 센터,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캐나다 내셔널 갤러리, 도쿄의 모리 미술관, 카타르 도하의 미술관, 그리고 우리나라의 리움 미술관에 설치됐다.

이 작품들은 좌대에 올려놓는 작은 조각상이 아니고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의 조형물이다. 아름다운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뿐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을 자아내는 이 작품의 제목이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되면 통상적인 어머니의 재현에 익숙한 이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흉측하게 생긴 형상의 조각상이 도대체 왜 ‘엄마’라는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일차적인 답은 작가인 루이스 부르주아가 들려주고 있다. 처음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이 작품이 선보였을 때 작가의 인터뷰 영상이 미술관 내에 함께 상영됐는데, 거기에서 부르주아는 거미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거미는 알을 자신의 몸에 품고 다니는 특성을 가지고,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자라면서 어미의 몸을 먹어치워 엄마 거미는 껍질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가 제작한 이 거미들은 알을 품은 암놈 거미이고, 거대한 ‘마망’ 아래에 서면 다리 사이에 품은 알주머니 속 대리석 알들을 볼 수 있다.

미술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그리고 지겹게도 이어지는 모자상의 전통 속에서 보자면 부르주아의 ‘엄마’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어쩐지 독기를 품은 것 같은 엄마, 알을 보호하기 위해서 몸을 부풀려 상대를 겁주는 형상의 거미 엄마의 모습에서 전통적인 모자상의 면모를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자리 잡고 있는 ‘마망’은 철과 스테인레스, 브론즈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었지만, 처음에는 맨홀 뚜껑, 수도관 파이프, 그리고 낫 등의 기성 재료들이 사용됐다. 특히 다리 끝에 이어 붙은 날카로운 낫은 이 무서운 형상에 더욱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충격적인 외양 때문에, 곤충으로서의 거미가 알을 보호하는 특성에 대한 부르주아의 설명을 듣고 나서도 왜 이렇게 공격적인 모습으로 엄마를 표현한 것인지는 단번에 이해되지는 않는다. 커다란 크기만큼 의문을 증폭시키는 이 작품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면 루이스 부르주아의 인생과 작품의 관계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2010년 뉴욕에서 100세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활발히 보여주었던 여성 작가이다. 부르주아의 아버지는 타피스트리를 생산하고 보수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가정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유한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가정은 겉에서 보이는 것과 그 안쪽의 상황이 다른 법, 부르주아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폭언을 일삼고 잦은 외도와 자녀들에 대한 억압으로 가족 전체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는 존재였다. 심지어 그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입주 가정교사와 외도를 하였고, 이를 모를 리 없었던 어머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의 행태를 묵인하고 참아야 했다. 여성 혐오를 담은 아버지의 폭언, 그에 맞대응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행패를 감내했던 어머니, 그리고 채 스무살이 되기 전에 사망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기억에 깊이 박혀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동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삶은 무엇이고, 여성에게 있어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고통스러운 성찰은 그녀의 작품 전반에 드러나 있다. 1940년대에 제작한 ‘여자의 집(Femme Maison)’에서는 여성의 신체가 집과 일체가 되어 있는데, 이 작품에서 ‘가정’와 ‘여성’의 관계에 대한 부르주아의 관점을 알면 파악할 수 있다.

하반신은 옷을 걸치지도 않은 모습으로 드러나 있고, 상반신은 집 그 자체로 보인다. 여성이 두 발을 딛고 선 마루 바닥과 그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이 비현실적인 장면을 오히려 더 기이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가느다란 두 팔이 상반신의 집에 힘겹게 붙어 있고, 한 손은 무슨 손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신호를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작게 그려져 있다. 집은 거대한 성과도 같이 아치형 입구들과 중앙의 계단, 그리고 많은 창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 있을 여성의 얼굴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1940년대 당시 일반적인 여성의 삶에 대한 상징적인 형상일 뿐 아니라, 자신이 경험했던 어머니의 삶과 딸로서 자신의 삶, 그리고 결혼생활에 접어든 자신의 삶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다. 물론 부르주아는 미술사가이자 미술관 관장이기도 했던 남편과의 결혼 이후 비교적 작가로서의 삶을 제대로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으나, 세 아들의 어머니로서 살아야 했던 삶은 또 다른 이야기였을 것이다. ‘여자의 집’에서 여자는 집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가? 벌거벗은 하반신이 그대로 노출된 채 눈코입이 가려지고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집과 일체가 된 여성의 몸은 집을 지탱하는 그 자체가 아닌가, 하고 이 작품은 묻고 있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작품 전반에 걸쳐 여성과 집의 관계를 묘사함으로써 반복적으로 세상이 강요하는 질서 속에서 여성의 삶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 왔다.

‘여자의 집’ 이후 50년이 지난 1990년대에 제작된 ‘마망’에서 여성은 몸에 품은 알이 아니면 성별을 알아챌 수 없는 거미의 형상으로 재등장했다. 부르주아는 ‘마망’의 모티프가 자신의 어머니였다고 말하고 있다. “거미는 나의 어머니께 바치는 송시입니다. 엄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죠. 거미처럼, 내 엄마는 베틀에서 베를 짜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타피스트리 복원 사업을 했고 내 엄마는 공방의 책임자였어요. 거미처럼, 내 어머니는 매우 영리했습니다. 거미는 모기를 잡아먹는 친근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기가 질병을 퍼뜨린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거미들은 우리를 돕고 보호하는 거지요, 내 엄마처럼 말이에요.” 노년기가 되어 부르주아는 자신의 십대에 생을 다한 어머니를 회고하며,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는 별개로 어머니가 자신에게 주었던 경험을 다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가정의 울타리에 갇혀 침묵하고 인내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영리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자식들을 보호했던 어머니로 말이다.

‘마망’에서 엄마로서의 여성은 더 이상 집에 갇혀 있지 않다. 거미 엄마는 긴 다리로 우뚝 서 세상을 지배할 기세이다. 여기에는 ‘가정의 보호 아래 남편과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아내이자 어머니’로 제한됐던 여성의 삶은 더 이상 없다. 거미 형상의 ‘엄마’는 강요된 이념으로서의 모성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으로부터 발현된 모성의 감정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엄마의 딸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엄마이기도 했던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은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의 내면적 체험이 극적으로 외화된 형태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로써, 거미의 형태를 통해 재현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새끼를 보호하면서 세계를 거니는 부르주아의 ‘마망’은 모성을 그리고 기려왔던 기존의 통상적 재현의 문법을 통쾌하게 부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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