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나리, 부사영감께서 청풍관내 향시 관리권을 넘기려 한단 말이지요?”

최풍원이 솔깃해져 물었다.

“그렇다니까. 근자에 들어 김주태 하는 꼬락서니가 영 맘에 안 들거든!”

김개동이가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다.

“나리가 힘을 써주신다면 부사영감은 제가 어떻게 해보겠사옵니다.”

최풍원이 김개동이 표정을 살피며 굽실거렸다.

관아 일이라는 것이 특히나 지방 관아에서 일어나는 일의 실무는 아전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각 고을의 관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 고을 아전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최풍원도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청풍 부사 이현로에게 따로 손을 쓰겠다는 것은 아무리 아전들이 관아 일을 맡아한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결정권이었다. 아전들에게는 어떤 일에 대한 결정권이 없었다. 고을 원이 아무리 허수아비라 해도 그는 임금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 있었다. 그 권한은 고을민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고 그 대신 세금을 걷어 한양으로 올려 보내는 일이 주된 것이었다. 그를 위해 고을 원이 결정하면 아전들은 행하는 것이었다.

향시는 고을민들의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향시 관리권을 넘기는 일이 손바닥을 뒤집듯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또 고을사정에 밝지 못한 고을 원 입장에서는 혹여 잘못 결정하여 더 혼란만 가중시킬 수도 있으니, 큰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구관이 명관이라고 웬만하면 바꾸는 일은 드물었다. 더구나 새로 온 신임 고을 원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전들은 지금까지의 고을 돌아가는 사정을 고하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춰 고을 원을 움직였다. 그렇지만 고을 원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면 아전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고을 원의 위치가 그런 것이었다. 최풍원이 김개동이 같은 아전들이 먼저 호응만 해준다면 부사 이현로를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 해보겠다는 것이 그 말이었다.

“향시 관리에 눈독을 들이다니 대단하구먼!”

“나리께서 도와주신다면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최풍원이 본격적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청풍 관내 향시 관리권만 북진여각에서 따낸다면 청풍도가 김주태를 꺼꾸러뜨리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최풍원으로서는 어떻게 하든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까지야 청풍관아와 청풍도가가 찰떡같이 들어붙어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런데 청풍도가의 공납품과 청풍관아의 비축미 문제로 김주태와 이현로 간에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에 이 틈바구니를 잘 헤집어 둘 사이를 갈라놓고 자신이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게 만만찮을 텐데?”

김개동이가 최풍원의 북진여각을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요?”

“김주태도 순순히 당하지는 않을 테고, 장세 징수권을 따내려면 돈이 엄천 들지 않겠는가?”

“나리께서 도와주신다면 뭘 걱정하오리까?”

최풍원이 또 굽실거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내가 다른 아전들에게는 말을 해놓을 테니, 최 행수는 영감이나 잘 구슬러 향시 관리권을 달라 해보게!”

“나리 은공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외다!”

“내게도 뭐가 오겠지?”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절대로 서운하게 해드리지 않을 테니, 그 점은 염려놓으시오!”

최풍원이 자신의 말에 힘을 주며, 김개동에게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렇다면 당장 다른 아전들을 만나 자네의 뜻을 전하겠네!”

“다른 아전들께도 섭섭지 않게 할 것이라 나리께서 잘 좀 전해주시오!”

최풍원이 돈과 물산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청풍관아를 찾은 주목적도 그것이었다. 청풍관아와 청풍도가의 유착관계를 끊지 않고는 김주태를 죽이기 어려웠다. 청풍 땅 이백 리 안팎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고, 청풍을 벗어나 종당에는 조선에서 떠르르한 거부가 되기 위해서는 청풍도가 김주태 부터 잡아 없애야 했다. 그리고 가슴에 맺힌 원한도 푸는 길이었다. 보연이 생각이 떠오르자 최풍원은 온 몸이 떨렸다.

최풍원은 청풍관아를 떠나 북진나루로 돌아오면서도 온통 김주태에 대한 생각으로 몰두해 있었다. 김주태를 철저하게 짓밟아 놓아야만 보연이 원한도 풀고 순풍에 돛 단 듯 북진여각의 앞길이 순탄해질 것이고 더 큰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쨌거나 김주태와는 처음만날 때부터 악연이었고, 함께 할 수 없는 원수였다. 우뚝한 비봉산 허리를 휘돌아 흐르는 남한강 물위로 붉게 물든 노을이 잔뜩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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