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큰집 무너지는 것이 어디 한꺼번에 무너지는가. 아무리 튼튼한 기둥이라도 하나 섞어 기울기 시작하면 무너지는 것일세! 아무리 부자라도 한 번 그렇게 된서리를 맞으면 골병이 드는 법이지. 그러다 안 좋은 소문 돌기 시작하면 사람들 왕래도 점점 끊기고 그래 곤두박질치는 거여. 그기 세상 돌아가는 이치여!”

“김주태한테 나쁜 일이 또 생겼단 말이유?”

최풍원은 지금 청풍도가 김주태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면서도 모른 체 했다.

“지금 김주태는 이중삼중으로 몰리고 있다네. 한양으로 올려 보낼 공납품도 마련해야 하고 우리 관아에서 내간 곡물도 채워놔야 하는데 아직도 하나도 들어온 것이 없다네!”

“맞춰놓겠지요.”

최풍원이 남의 다리 긁는 소리를 했다.

“뭘루 하겠는가? 곱절로 늘려주겠다고 풍을 치고 관아 창고에서 가져간 곡물도 못 갚고 있는 형편에 공납품은 무슨 돈으로 매입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공납품은 이미 한참 전부터 한양에서 경아전들이 대신 내주고 지방 아전들에게 돈으로 받고 있다네. 그런데 이번에 그렇게 날려버리고 말았으니 뭘루 하겠는가.”

김개동 역시 남 이야기하듯 그의 표정에서 측은해한다거나 안타까워하는 느낌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김개동이 말처럼 세상인심이 다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누가 곤경에 처하면 도와주려하고 도와줄 것이 없으면 마음이라도 보태주려고 한다. 누가 슬픈 일을 당하면 그를 측은하게 여기고 위로해주려 한다. 그것이 인지상정이었다. 그런데 김주태가 어려운 일을 당해 곤경에 처했는데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김주태와 함께 평생 관아 일을 하는 김개동 역시 그러했다. 그동안 김주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김주태가 사면초과겠구먼유?”

“이번 일이 잘못되면 부사는 청풍관내 향시 관리권도 거둬들일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으이.”

최풍원의 말 끝에 김개동이가 묻지도 않는 말을 무심코 던졌다.

“향시 관리권이라면, 장세를 말씀하시는 것이온지?”

“그렇다네! 지금 관아에서는 장세도 빼앗을 생각을 하고 있네!”

“그럼 청풍도가는 정말 망하는 것 아니유?”

“그야 김주태 사정이니 내 알 바 아니지.”

이제껏 서로 주고받으며 찰떡같이 붙어먹다 일이 틀어지게 되자 김개동이 김주태를 헌 짚신짝 버리듯 했다.

청풍도가 김주태가 청풍관내 향시 관리권을 잃게 된다면 용이 여의주를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주태에게 향시 관리권은 도깨비방망이나 다름없었다. 향시 관리권이라 했지만 실상은 장세를 거둬들이는 것이었다. 장세라는 것이 도깨비방망이 못지않은 화수분이었다. 왜 그런가하니 나가기만 하면 돈을 거둬올 수 있었다. 땅을 빌려주고 받는 경작세는 일 년에 한 번이었지만, 장세는 닷 세마다 열리는 향시가 되면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이었다. 그리고 향시는 청풍읍내에서 열리는 읍시 뿐만 아니라 청풍관내에는 한천·수산·제천·신당 향시가 있었다. 이런 다섯 개의 향시에서 보부상이나 행상들은 물론 가용에 보태려고 나온 일반 고을민들까지 물건을 팔러 나온 사람들에게는 장세를 받아들였다. 닷 세마다 어김없이 들어오는 장세는 엄청났다. 물론 그 돈을 김주태 혼자 독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관아에서도 향시 관리권을 김주태에게 부여한 대신 부사는 물론이고 아전들까지 장세를 나눠먹고 있었다. 아무리 나눠먹고는 있다고 해도 칼자루를 쥔 놈이 더 먹기 마련이었다. 더 먹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 돈을 만지는 놈이 어떻게 장난질을 치느냐에 따라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떡 무치는 놈 손바닥에 고물이 더 붙을 수밖에 없었다.

“김주태가 처음하고는 엄청 변했어!”

“변하다니요?”

“첨에 관리권을 얻어낼 때는 아전들한테 갖은 아양을 다 떨며 지랄을 하더니 이젠 우리 알기를 개 머루 보듯 하는구먼. 그리고 지금은 장세도 엄청 늘어났는데 우리한테 주는 것은 첨과 별반 늘어나지 않았구먼. 김주태가 돈을 벌더니 안하무인이 되었구먼. 이젠 영감 말도 잘 듣지 않어! 아무리 돈이 양반인 세상이라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녀?”

김개동이도 김주태에게 상당한 불만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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