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관에서 하는 일은 다 절차가 있는 벱이여!”

“언제는 우리 의견 물어보고 저지른 일이오. 우리한테는 일언반구도 없이 관아 맘대로 저질러놓고 무슨 시간을 달라는 것이오. 당장 이 자리에서 확답을 주슈!”

“관아에서 하는 일인데, 집일처럼 그렇게 후딱후딱 되는 게 아니구먼. 그러니 믿고 돌아가 기다리게! 자꾸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 나도 여기서 더 이상 뭘 어떻게 할 수 없다네!”

김주태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듯 버팅겼다.

“이보시오들! 여적지 심들게 살어왔는디 그새야 못 기다리겠소. 돌아가서 기다려봅시다!”

“이번에도 또 딴소리 하겠소이까. 한 번 믿어봅시다!”

금남루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에 끝까지 버티며 확답을 얻어내자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기다려보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운집했던 고을민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김주태가 한 일이 뭔지 아는가?”

김개동이가 최풍원에게 물었다.

“고을민들이 짓던 텃밭을 돌려줬겠지요.”

최풍원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주태가 그렇게 순순하게 고을민들에게 땅을 돌려주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김개동보다도 최풍원이 김주태의 야비함을 더 환하게 꿰고 있었다.

“천만에 만만에 콩떡올시다.”

“그럼 딴 짓을 했단 말이우?”

최풍원이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김주태 참 무서운 놈이여!”

“무서운 놈이 아니라 야비한 놈이겠지요.”

무심결에 최풍원이 김주태를 욕했다.

“놈 자가 뭔가! 없는 자리에선 나랏님도 욕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장사가 관아 서리한테 그리 막말을 해도 되겠는가?”

역시 가재는 게 편이었다. 김개동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도끼눈을 치뜨며 최풍원을 노려보았다. 사농공상 중 가장 바닥 신분인 장사꾼 주제에 비록 중인이지만 양반 버금가는 권세와 부를 누리고 있는 아전을 욕하니 김개동도 그냥 넘어가기는 몹시 거슬렸던 것이다.

“나리, 송구하옵니다!”

최풍원이 재빨리 용서를 구했다.

아무리 세상이 곤두박질을 치고, 풍속이 망가졌다 해도 아직은 엄연한 신분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특히나 자신이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김개동은 최풍원이가 돈 쾌와 물건을 바리바리 지고 관아를 찾아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김개동 입장에서는 최풍원이를 마구 대해도 거리낌이 없었다. 최풍원이 머리를 조아리며 자세를 낮추었다.

“참 말세여!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김개동이가 최풍원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아이고, 지가 잠시 정신줄을 놓았습니다요.”

최풍원이 더욱 허리를 구부리며 굽실거렸다.

제 똥 구린 것은 모르고 남 똥 싼 타령만 한다더니 김개동이가 그런 꼬락서니였다. 관아에서 부사와 아전의 신분차이는 최풍원과 김개동과의 차이 정도가 아니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보다 몇 곱절은 높은 자리에 있는 관계였다. 그런데도 아전들은 부사를 우습게 여기고 떡 주무르듯 했다. 고을을 다스리는 최고의 자리에 있는 부사였지만 고을 사정을 잘 알지 못하니 부사가 부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부사는 아전들 눈치를 보며 그들이 하자는 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어험! 어험!”

김개동이가 거푸 잔기침을 하며 거드름을 피웠다. 그러더니 김주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김주태가 금남루 앞에 운집해있던 고을민들을 보내놓고 뒷구멍으로 한 일은 그들을 더 고랑탱이로 빠뜨릴 모사를 꾸미는 일이었다. 김주태가 청풍부사 이현로에게 일만 냥이라는 거금을 내놓은 처음 속셈은 양안에 등재되지 않은 땅을 사사로이 장부를 만들어 빼앗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 땅을 자기 소유로 만들어 다시 고을민들에게 빌려주고 도지를 받을 의도였다. 그런데 그것이 분터골 점구가 분란을 일으키고 고을민들까지 합세해 관아 금남루 앞까지 몰려와 농성을 벌이자 제동이 걸린 것이었다. 그러자 다시 모사를 꾸민 것이다. 김주태는 농민들에게 땅은 돌려주고, 청풍관내 모든 자투리땅에 대한 수조권을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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