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어릴 적, 벌에 쏘이면 할머니는 된장을 발라주셨다. 새벽마다 장독대에 정화수 떠 올리시던 할머니는 병원을 가지 않고도, 약을 쓰지 않고도 모든 병을 관장하셨다. 배가 아프면 쓸개즙을 먹였고 상처가 나거나 이빨이 빠지거나 열이 나거나 하면 대대로 내려오는 당신만의 처방전이 있었다. 나의 믿음은 할머니가 믿고 있는 그 무엇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를 따라 두 곳에 간 적 있었다. 첫 번째는 교회였다. 태어나 처음 교회 안에 들어가 보았다. 선교에 미숙한 선배였을까. 두 번 다시는 가지 않았다. 두 번째는 증산도였다. 시내 2층 어디쯤으로 기억한다. 벽면에 단군 초상이 걸려있었고 또래쯤 돼 보이는 학생이 많았다. 음료수와 빵을 먹은 기억이다. 아주 낯선 환경과 사람들 속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조상 대대로 불교 집안이었지만, 절에 다니지도 않는다. 사찰에 갈 일이 많았지만, 부처님 앞에 절하는 행동도 낯설었다. 독불장군처럼 어떤 신앙심도 생기지 않았다. 무신론자처럼 나는 어떤 신도 필요치 않다.

성당에 처음 가본 것은 결혼식 때였다. 성당에서 결혼하기 위해 혼인교리를 받았고 불교신자인 고향 어르신들을 성당으로 모셨다. 성당이 아니라 기독교 단체의 교회였다면 고민했겠지만, 왠지 가톨릭은 사찰처럼 싫지만은 않았다.

어리숙하게 보였는지 대학교 때는 조상을 거론하며 접근하는 이들이 많았다. 알고 보니 대순진리회 같은 집단이었다. 귀찮게 쫓아오는 이를 단호하게 밀쳐내지 못하면 그들의 작전에 말려들고 말 것이다. 같은 일을 자주 겪다 보니 나름 대처 방법도 늘었다.

잠시 단월드에 다닌 적 있었다. 몸의 원활한 기 순환을 돕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찾는 수련을 했다. 손에서 장풍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정수리를 통해 강한 기운이 들어오는 체험도 했다. 절대로 종교 단체가 아니라고 했지만, 몇 개월의 경험으로 족했다.

마지막 구원의 손길은 남묘호렌게쿄를 다니는 분이었다. 한사코 싫다 하는데, 좋은 행사가 있으니 와보라고 전화를 했다.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이 완치되었다고 하니 좋은 일이긴 했다. 끝내 나는 어떤 구원의 손길도 잡지 않은 셈이다.

애초에 믿음이 없으니 신천지 같은 집단의 손길을 받지 못할 것이다. 밤마다 불타는 도시의 십자가를 싫어하므로 교회에 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늘 찾아오는 고양이들에게 미련 없이 먹이를 내어주는 일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들도 배가 고파 찾아올 뿐, 나에게 그 이상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배고파도 참고, 아프고 힘들어도 참아라. 다 그분의 뜻이라는 말보다는 한 줌의 사료가 더 나을 때도 있다. 더 많은 고양이를 데려오라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누구를 위해 이 땅의 신은 존재하는 것이며, 누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도 세상 모든 생명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며, 모든 생명의 구원을 꿈꾸는 이도 없어 보인다. 우리에게 돈 보다 중요한 구원이 없는 것처럼, 돈 없이는 어떤 구원도 받을 수 없다.

고양이 사료가 떨어졌을 때, 캔을 가져다준 이들이 상처에 된장을 발라주던 손길이며, 먹잇감 바라보듯 내 뒤만 쫓는 고양이의 진정한 구원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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