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대부분이 지주들이었지만 땅주인들은 소작인이나 머슴들을 시켜 개간을 시켜 야곰야곰 땅을 넓혀갔다. 농사를 지어 나라에 내는 세금은 양안에 등록되어 있는 땅의 면적에 기준하여 부과하고 있었다. 그러니 양안 외의 땅에서 나오는 소출분에 대한 세금은 지주들이 착복하여 사사로이 배를 채우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양안에 없는 땅은 먹는 놈이 임자였다. 청풍도가 김주태는 이런 것을 이용하여 고을민들의 자투리땅에 대한 징수권을 선점하기 위해 잔머리를 쓴 것이었다. 가짜 양안을 만들어 고을민들의 경작권을 빼앗고 지세에 대한 징수권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관아에서 하는 일이라고 밀어붙이면 고을민들도 꼼짝 못할 것이고 자신의 계획대로 일사천리로 일이 추진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분터골 점구란 놈이 안암장터에서 장꾼들을 선동하고 급기야는 불만을 가진 고을민들이 합세해 관아 정문까지 몰려들어 쟁의를 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하자 또다시 잔머리를 쓴 것이었다. 관아 앞이 시끄러워지자 이번 사건의 장본인인 김주태가 고을민들 앞에 나섰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렇게들 몰려다니며 민심을 흉흉하게 만드느냐! 크게들 한 번 혼구멍이 나봐야 정신들 차릴텐가?”

김주태가 금남루 앞에 모여 있는 고을민들을 향해 엄포부터 놓았다.

“민심을 흉흉하게 만드는 건 우리 고을민이 아니라 관아가 아니유? 우리도 어지간하면 뱃가죽이 등대기에 가 붙어도 전디볼라 했슈! 그런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녀유?”

“맞구먼유. 백성이 살기 심들어지면 있던 세금도 탕감해준다는데, 어떻게 된누무게 우리 청풍관아에서는 없던 세금도 만들어서 거둬가니 우떻게 살겠슈?”

워낙에 고을민들 쌓인 불만이 켜켜한 지라 사람들은 기 하나 죽지 않고 대들었다.

“이놈들, 니놈들이 무지하고 게을러 뱃가죽이 등대기에 가붙었지 관아에서 숟가락질 못허게 니놈들 손모가지를 붙들어 맸다더냐?”

김주태 역시 밀리지 않고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호령했다.

“그렇게 알뜰히 관아에서 빼앗아 가는데 우리가 먹을 게 있겠소!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고을민들 텃밭에까지 세금을 매겨 걷어가니 우리 농군들은 죽으라는 것과 뭐가 다르것소!”

“맞구먼! 고을민을 살리는 관아가 아니라 고을민을 죽이려는 관아여!”

“도지 얻어 농사 지어봐야 땅주인한테 도지 내고 관아에 세금 뜯기고 이중삼중 뜯어가는 놈만 있으니 이래 살겠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관아나 한번 뒤집어 엎어버리자구!”

고을민들도 전혀 물러날 기미 없이 날을 세웠다.

“이놈들! 니놈들이 감히 관아를 겁박해, 겁도 없구나!”

김주태가 눈을 부라리며 겁박을 해도 고을민들 역시 이판사판이었다.

“고을민들 알궈먹기만 하는 관아가 관아냐?”

“관아에 불을 놔버려!”

아무리 허깨비 같은 고을민들이라도 여럿이 한데 모여 있으니 서로에게 힘이 되는가보다. 이전 같으면 관아 앞만 지나가려 해도 주눅이 들어 고개를 모로 돌리고 잰걸음으로 꽁무니가 보이지 않게 사라지던 사람들이 관아를 태워버리자는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내뱉고 있었다. 겁박한다고 흩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관아에 해코지하면 삼족이 멸족이여. 아무리 몽매한 촌 무지랭이들이라 해도 뭘 알고나 떠드는 게여? 입은 뒀다 밥 먹을 때만 쓰는 것이냐? 일을 해결하려면 말로 풀어나가야지 그렇게 무대포로 한다고 되는 게 아녀. 말로 해! 말로!”

김주태가 겁박과 회유를 섞어가며 고을민들을 호달구더니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한 발 물러섰다.

“당장 우리 텃밭이나 내놔라!”

“텃밭에서 징수한 세금도 뭉개버려라!”

“텃밭은 가져간 적이 없으니 그렇고 지세는 없애주겠다!”

어쩐 일인지 김주태가 순순하게 고을민들의 텃밭에서 걷어가던 세금도 없애버리겠다고 공언했다.

“증말이유!”

“참말로 세금을 없애준단 말이지유?”

“관아에서 한 입으로 두 말 하겠는가, 더구나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러니 모두들 흩어져 각자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면 두어 파수 전에 연락이 갈 걸세!”

“지금 당장 여기서 하면 되지, 뭣 때문에 두어 파수씩 필요하단 말이유?”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