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가까운데도 자주 못가는 관음사에 올라갔다. 관음사를 가려면 시내버스를 타고 청주대학교 앞에서 내려 대학캠퍼스를 지나 후문으로 나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걸어서 가기로 했다. 아파트를 나와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캠퍼스를 지나 우암산 순환도로를 통하여 여유만만하게 걸으면 된다.

청주우체국을 지나 예술대학을 향하여 걸었다. 볕이 따갑다. 바람막이를 벗어 가방에 넣었다. 서두를 것도 없이 천천히 걸었다. 예술대학에서 우암산 우회도로 올라가는 길이 조금 가파르지만 문제 되지 않는다. 인문대학 후문에 이르면 바로 관음사 진입로와 마주친다.

일주문 대신 바위에 ‘대한불교조계종 관음사’를 큰 글씨로 새겼다. 진입로에는 차를 타고 올라가는 신도가 많다. 주차 시설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사찰 주차장엔 몇 대밖에 주차할 수 없다. 절이란 걸어 다니는 곳이다. 부처님 앞에서나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아미타불’하고 욀 것이 아니라 걷는 수행을 해야 한다. 그것을 고통이라 생각하면 고행이고, 자신을 닦는 길이라 생각하면 곧 수행이다. 땀이 흘러 이마에 묻은 세파의 때를 씻어 내린다.

천불보전 앞에 도착했다. 천불보전은 웅장하다. 천불보전 앞에서 삼배를 올리니 희망이 보인다. 혹 나도 부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 말이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분이다. 누구나 진리를 보면 바로 부처가 된다. 천불전은 그렇게 성불한 많은 부처님을 모신 불전이다. 다불사상(多佛思想)에 따라 등장한 불전이다. 미몽을 헤매는 중생인 나도 가능할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마당 가득 연등이 화려하다. 절 마당에 생동하는 움직임이 가득하다. 보살 몇 분이 천불보전 안으로 들어간다. 스님은 보이지 않는다.

극락보전에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 천불보전을 뒤로 하고 극락보전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계단에 포대화상이 크게 웃고 있다. 저 양반은 언제 봐도 사람 좋은 웃음이다. 그냥 동네 아저씨를 보는 것 같다. 배에 수택이 인다. 복을 기원하는 대중이 수행한 흔적이다.

극락보전에 들어가니 스님 혼자서 독경을 하고 계시다. 문에 들어가기 전에 불전을 찾느라 지갑을 꺼내보니 천 원짜리도 오천 원짜리도 없다. “아, 이런” 작은 동전지갑에 분명 오천 원짜리가 있었는데 열어보니 없다. 할 수 없이 만 원짜리를 빼어 들고 법당에 들어갔는데 스님이 계시다. 꼭 그분이 내 치졸한 행동을 지켜본 것 같아 뜨끔했다. 아니 스님이 보지 못했더라도 일만 원짜리를 불전함에 넣으며 약간은 떨고 있었을 내 모습을 부처님이 다 보았을 것이다. 짚이는 대로 불전을 놓지 못하고 이리 저리 작은 것을 찾은 내가 잠시 부끄러웠다.

마애불은 자연적인 바위벽에 부조한 것이 아니라 돌을 다듬어 세워 모셨다. 아니 돌을 다듬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 깊은 석공이 한 덩어리 바위에서 부처님을 찾아 모신 것이다. 바위를 부처님으로 본 석공의 혜안이 두렵다. 그러나 불상이란 다 허상인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부처님이 참 부처이다. 불상을 대하여 부처님이라 하지 않고 불상이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마음속에 모신 부처님을 상으로 형상화하여 모신 것이 불상이다. 어디에서 무엇으로 만들었다하여 더 못한 불상 더 나은 불상이 될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마음에 모신 부처님이 참 부처님이다. 천불전에 모신 천불 중에 내가 마음에 모신 부처님이 계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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