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부사 영감도 먹은 게 있고, 무지랭이 농투산이들이니 제깟 놈들이 뭘 어쩌겠냐 싶어 그러다 주저앉겠지 하고 그냥 무시해버렸지.”

“그래서 주저앉았는가요?”

“그랬다면 김주태도 그런 자충수를 두진 않았겄지!”

“그럼 농군들이 뭘 어찌 했다는 건가요?”

“분터골에 사는 점구라는 놈이 안암장날 장터에 나와 장꾼들을 모아놓고 지랄을 떤 게여.”

“점구는 뭘 하는 사람인데 그런 일을 벌였대요?”

“뭔 사람은 뭔 사람이여. 부랄 두 쪽 밖에는 개뿔도 없는 놈이지!”

“그런 사람이 뭣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인 게유?”

“벌래 가진 거 없고 잃을 거 없는 것들이 그런 거여. 분터골에서 숯 구우며 사는 놈인데, 가마 바로 앞에 부쳐 먹던 텃밭을 빼앗기게 되니까 이참저참에 장에 나와 탁배기 처먹고 술김에 그 지랄을 한 거여.”

가재는 게 편이라고 김개동이는 같은 아전인 김주태를 은근히 까내리면서도 잘못은 분터골 점구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그래 분란을 일으킨 점구는 어떻게 되었소이까?”

“뭘 어떻게 돼. 그간 놈쯤이야 관아에서 포졸들이 득달같이 달려가 잡아왔지. 그런데 그 다음에 문제가 생긴 거여.”

“잡아다 가뒀는데 뭔 문제가 생겼단 말이유?”

“점구가 문제가 아니라 분터골 마을사람들이 떼를 모아 김주태를 성토하고 나선 거여. 왜 나라 땅 세금을 북진도가 장사꾼들이 받으러 다니느냐고 따지며 관아 문 앞까지 와 들고 일어난 거여! 그리고는 자기들 부치던 땅을 당장 돌려달라고 산호를 벌인 거여!”

“그래 고을미들한테 땅을 돌려줬답디까?”

“지 입에 들어온 고기를 순순히 내놓았겠는가? 더구나 그게 윗전도 아니고 무지랭이 고을민들 것인데. 그리고는 김주태가 잔꾀를 낸 거여.”

“김주태가 어떤 잔꾀를 부렸단 말입니까요?”

“김주태가 영감에게 일만 냥을 내놓을 테니 양안에 올라있는 땅 지세 권리를 자기한테 넘겨달라고 한 거여.”

“여적지 고을민들이 제 살처럼 부쳐 먹던 땅을 김주태는 뭔 권리로 돈을 내 권리권을 사고 부사는 뭔 명목으로 그걸 판단 말이오.”

“권리는 무슨 권리고 명목은 무슨 명목인가. 관아에서 하는 일이라 밀어붙이면 찍소리도 못하는 게 농군들 아닌가. 그것들 푸르르할 때만 들썩들썩했다가 누구라도 하나 잡아다 경을 치면 금방 땅바닥에 코를 박고 수구리하는 게 그놈들 아닌가?”

“그래, 그 일은 주저앉았답디까?”

“그럼, 그 개똥같은 것들이 관아에서 하는 일을 어쩌겠는가?”

“그건 그렇고 그 땅에서 지세를 받아 얼마나 번다고 김주태는 그 거금을 주었답니까? 그 땅에서 그만한 돈이 나온답디까?”

일만 냥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어차피 양안에도 없는 주인도 없는 땅이니 고을 놈들 몇 놈 잡아다 주리를 틀고 입막음을 하면 잠잠해질 터이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제 땅처럼 도지를 받아 챙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땅에 대한 토지세 권리를 명목으로 그 같은 거금을 관아 부사에게 내놓았다는 것이 최풍원은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벌 넓은 고을이라면 몰라도 우리 청풍 같은 산골에서, 더구나 전답도 아니고 텃밭 같은 자투리땅에서 나오는 소출이 얼마나 된다고 그 돈이 나오겠는가. 김주태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거여!”

“다른 꿍꿍이라니요?”

“그래서 김주태가 난 놈이란 거여. 돈 버는 일이라면 그 잔대가리가 이만저만이 아니여. 하기야 그러니 그만한 재산을 불렸겠지.”

김개동이는 김주태의 그런 머리는 아무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거라며 체머리 질을 했다. 김주태가 그런 거금을 청풍부사 이현로에게 바친 속셈을 김개동이가 소상하게 전했다.

어차피 김주태가 지세 권리를 얻으려고 한 땅은 주인이 없는 땅이었다. 양안에도 없는 땅이니 나라 땅이라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 땅을 사고 파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땅에 대한 세금이나 조지를 받은 권리는 달랐다. 실제 양안에 등재된 땅을 보더라도 거기에 올라있는 땅보다 실제 땅은 훨씬 넓었다. 심지어는 몇 배나 더 넓은 땅도 수두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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