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모든 것의 시작은 두렵다. 실패를 떠올리면 더욱더 그렇다. 두려움은 불안과 공포를 모두 포함한다. 불안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오고, 공포는 알지만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데서 온다고 한다. 두려움은 나이와 상관없이, 경험과 상관없이 인간이 마주치는 정서이다. 두려움이 드는 것은 안전을 위한 조심성과 연관된다는 순기능도 있다. 그러니 두려움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피터 레이놀즈가 쓰고 그린 책 ‘점’은 이제 막 넓은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새싹들에게 전하는 최고의 응원 메시지라고 할 만하다.

주인공 베티는 미술 시간이 끝났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다. 도화지는 하얀색 그대로인 채. 이때 선생님은 달래듯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라고 한다. 베티는 연필을 내리찍듯 점 하나를 그린다. 선생님은 베티가 그린 그림에 이름을 쓰라고 한다.

베티는 일주일이 지난 뒤 미술 시간이 되어 금빛 액자에 넣어 책상 위에 걸린 자신이 찍은 점을 발견한다. ‘저것보다 훨씬 멋진 점을 그릴 수 있었는데’라고 말하고는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물감을 써서 점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여러 색깔들을 섞어가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점들을 그렸다. 드디어 미술전시회에선 인기 만점의 그림이 되었다.

베티는 원래 그림을 못 그리는 아이였을까? 아니면 누군가 옆에서 베티가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게 하지는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을 때 그 싹을 짓밟지는 않았을까?

다행히도 그런 베티에겐 선생님이 있었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베티에게 건넨 말 한마디가 베티에게 시작할 용기를 갖도록 밑거름이 된 것이다. 아이가 무심코 찍어놓은 점 하나에 한 아이의 가능성을 열 의미를 부여해준 선생님. 무엇이든 좋으니 그려보라고 격려하고, 기다려주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쉽지 않지만 필요한 일이기는 하다. 어른은 늘 바쁘고 시간이 없어서 아이를 무한정 기다려 줄 수 없고, 무엇보다 아이에 대한 확신이 없고,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정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베티 반응에 예의를 들먹이지 않고 배려하고 희망을 주고 능력을 인정하기까지 선생님의 노력은 마땅히 어른이 아이들에게 베풀어야 할 지혜이며 예의일 것이다.

점은 액자와 만나 또 다른 희망의 세상이 만들어졌다. 미술 시간이 끝나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도 혼자서 백지 앞에 막막하게 앉아 있는 베티. 그 때 선생님이 귀찮아하며 베티를 다그치고 구박하며 하얀 도화지를 그냥 거둬들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망설임과 초조함, 불안함 끝에 내리찍은 점 하나는 선생님의 깊은 사랑을 거쳐 학교 벽면을 가득 채우는 멋진 작품으로 태어난다.

아이들에겐 절대자요 넘어설 수 없는 강한 존재인 어른. 인정받고 싶은 대상인 어른의 따뜻한 배려와 격려는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모든 배티에게 필요하다.

베티의 그림을 보고 한 아이가 어떻게 하면 이런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물었을 때 베티는 대답한다.

“너도 할 수 있어 무엇이든 해봐.” 하고 빙그레 웃으며 하얀 도화지를 건넨다.

아이가 그린 비뚤비뚤한 선을 한참 바라보더니 말한다. “자, 여기 네 이름을 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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