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즈이에게도 청풍 관내에서 공납하는 특산품을 나눠주셨으면?”

최풍원이 청풍도가에 일임한 공납품 일부를 북진여각에 떼어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런 꿍꿍이가 있었구먼!”

김개동이가 아직도 동헌 앞마당에 부려놓은 짐들을 보며 빙긋하게 웃었다.

“딱히 그것만은 아니고, 지금 관아가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겸사겸사해서 온 것이니 나리께서는 크게 마음 쓰지 마시오.”

최풍원이 말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하였지만, 김개동이로서는 아무것도 해주는 일 없이 남의 물건을 거저 받는다는 것이 속 편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공것 좋아하고 고을민들 물건을 제 것처럼 걷어다 쓰는 아전이라도 그것은 힘없는 사람들인 경우이고, 최풍원은 경우가 달랐다. 김개동은 최풍원이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동헌 마당을 들어설 때부터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한 번 뜯어먹고 말 상대라면 안면 몰수하고 내 집안으로 들어온 개 잡아먹듯 했겠지만 최풍원과 잘만 안면을 트면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있겠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염치로 사는 법인데 그럴 수야 있는가. 남의 것을 얻어먹었으면 갚는 것이 도리 아니겠는가? 그래, 공납품 일부를 떼어 달라 했는데……으흠!”

김개동이가 자못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 거드름을 피웠다.

“그리 해줄 수 있겠사옵니까?”

최풍원이 찰싹 달라붙었다.

“그래 그걸 잘해 낼 수 있겠는가?”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연전에도 이미 충주 상전 특산품 일부를 내려 받아 대궐에 공납을 했구먼요!”

“그게 아니라, 으흠!”

최풍원이 기회다 싶어 충주 윤왕구 객주로부터 하청을 받아 공납했던 일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김개동이는 뭔가 찜찜해하는 눈치였다. 김개동이도 이미 그 일은 알고 있었다. 고을에서 생긴 일이라면 누구네 집에 돼지새끼 몇 마리 낳은 것까지 꿰고 있는 그가 청풍도가가 아닌 강 건너 북진에서 대궐에 공납한 일을 모를 리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최풍원이 김개동의 표정을 살피며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북진여각을 모르겠는가? 그게 아니라 내가 공납품을 할당해주면 그에 대한 대가는 치르겠는가?”

“대가라니요?”

“그렇지 않은가. 공납권을 넘겨준다면 대가가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내 말은 청풍도가만큼 그걸 낼 수 있겠는가 그 말이네?”

김개동의 속셈은 거기에 있었다.

“그야 당연합죠! 까투리 사냥 가는데 매가 빠질 수 있는갑죠?”

“그래, 얼마나 떼어줄 수 있는가?”

“그야 어떤 물산을 공납품으로 떼어줄 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 깝쇼?”

“한꺼번에 넘긴다면 청풍도가 반발도 있을 터이고, 우선 청풍 관내 전에서 나오는 작물부터 떼어줄 테니 그것부터 한 번 해보게나.”

김개동이가 청풍관내 밭에 대한 관리부터 맡아보라고 했다.

최풍원의 욕심 같아서는 지금 청풍도가 김주태가 독점하고 있는 모든 전답 관리권을 일시에 빼앗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되는 일은 아니었다. 이제껏 서로 찰떡같이 들어붙어 누대에 걸쳐 해먹던 일을 단칼에 자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선 청풍관내 밭에 대한 공납권만 해도 북진여각으로서는 큰 수확이었다. 청풍은 지형 여건상 논에 비해 밭 면적이 배도 넘었다. 그것은 관아 양안에 등록되어 있는 토지의 경우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양안에서 빠져 은닉된 밭까지 한다면 논보다 서너 배는 넓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논에서 나오는 소출과 밭에서 나오는 소출을 돈으로 환산하면 논이 서너 배는 높았다. 그렇지만 첫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최풍원의 최종 목표는 청풍도가 김주태를 꺼꾸러뜨리고 상권을 빼앗는 것이었다.

“김주태가 가만히 있을까요?”

최풍원은 공납권을 받고 관아에 바칠 대가보다도 청풍도가 김주태의 반발이 더 염려되었다.

“지금 김주태는 똥끝이 타고 있을 걸세! 지난번에 부사에게 불려와 된통 치도곤을 당했거든. 만약 기일 내에 관아에서 내간 곡물을 채워놓지 않으면 즉시 잡아들이겠다고 호통을 쳐놨으니 그걸 모으느라 다른 것 생각할 겨를도 없을 걸세! 설령 지가 그걸 안다하여 뭘 어쩌겠는가? 이번에 부사와 약속한 것을 또 어겼으니 무슨 낯이 있겠는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우?”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