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충청매일] 의심암귀(疑心暗鬼). 중국의 고전 열자(列子)의 설부편(說符篇)에 나오는 말로,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귀신이 생긴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상황이나 현상 등에 대해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면, 그 상황이나 현상 등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판단하지 못한 채 자신의 주관적 생각대로 의심하게 된다는 말이다.

요즘 정치권이나 사회 곳곳에서 소위 ‘가짜뉴스’가 화두다. 거짓이 언론이나 인터넷포털,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실로 둔갑해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선입관이나 편견을 갖게 하면서 이를 진실로 믿게 되는 경향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사실이 아닌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오인해서 파급되는 경우도 있고, 시중에 떠돌거나 주변에서 들은 말들을 논리적으로 재가공해 마치 하나의 확인된 정보처럼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

가장 나쁜 것은 의도적으로 허위 정보를 만들어 파생시키는 악의적인 경우다. 근원적으로 가짜뉴스는 신뢰의 문제다.

미디어나 포털이 갖는 신뢰도에 대한 미필적 확신이 기인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뉴스들은 대부분 사실일 것이라는, 포털에서 검색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도 검증 과정을 거친 사실일 것이라는 보편적 인식이 팽배한 까닭이다.

또 어떤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 즉 뉴스 전달자의 사회적 지위나 명성 등도 뉴스의 신뢰성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확산 과정에서 방역조치나 마스크 대란 등 정부의 대응 부실에 대한 진정한 사과나 책임 인정은 뒷전인 채 가짜뉴스를 척결하겠다는 엄포만 내놓는 정부와 여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부와 여당이 발표하는 정책이나 책임자들이 내놓는 말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높다면 아무리 가짜뉴스가 판을 쳐도 이를 진실로 믿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터.

되레 툭하면 설화(舌禍)와 말바꾸기로 국민적 분노와 불신만 야기하는 것이 가짜뉴스를 초래하고 이를 진실로 믿게 하는 근본적 책임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어쩌면 절대적 가치를 지녀야 할 신뢰에 대한 판단과 시각부터 의심으로 흔들리면서 확인된 진실조차도 수상쩍게 여기게 됨으로써, 사회적 갈등이나 반목 등 또 다른 부정적 여파를 초래하는 것도 그들의 원죄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 노선과 이념에 함몰돼 정부와 여당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의도적 가짜뉴스를 퍼뜨려, 맹목적적인 추종자들은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삼는 대신 반론이나 비판 세력을 적대시하게 만드는 여권 정치인이나 지지 세력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설령 그러한 행태가 지지층의 결집을 가져올지는 몰라도, 국민 사이의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지와 신뢰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각성해야 한다.

‘신뢰는 거울과 같다. 한 번 금이 가면 원래대로 하나가 되지 않는다’는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Henri-Frederic Amiel)의 교훈처럼,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는 ‘강요된 신뢰’는 오히려 의심만 커질 뿐 진실이 될 수 없음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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