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풍원은 청풍관아와 결탁하여 이권을 챙기고 있는 청풍도가의 고리를 끊어버릴 작정이었다. 청풍도가는 관아 부사와 아전들에게 뒷돈을 주고 청풍관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산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그런 피해는 고스란히 고을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부사야 그 돈을 챙겨 대궐의 높은 대감들에게 약채를 써 떠나가면 그런대로 그만일 수도 있었겠지만 관아 아전이나 도가 김주태의 경우에는 달랐다. 청풍도가는 관아의 비호 아래 관내 모든 향시의 거래물품을 독점하고 제멋대로 물건 값을 정해 팔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을민들이 관아에 공납할 특산물을 가로채 대신 납부하고 그것을 빌미로 갖은 명목을 붙여 착취를 일삼았다. 김개동 같은 청풍관아 아전들이나 김주태 같은 도가 장사꾼들은 그렇게 끌어 모은 돈으로 청풍관내의 모든 땅들을 사들였다. 그 땅은 고을민들에게 도지를 주어 경작을 하게 하였다. 자기 땅을 잃어버린 고을민들은 그 밑에서 종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농사를 지은 대가로 몇 낱 받아야 땅세, 공납금, 장리쌀, 온갖 명목의 세금으로 빚도 청산하지 못했다. 김주태나 김개동이가 축적한 재산은 모두 그런 것들이었다. 이런 그들의 유착 관계를 끊어버리지 못하면 북진여각이 청풍 관내에서 상권을 잡기란 언년이 턱주가리에 수염보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최풍원도 청풍관아에 약채를 써왔다. 또 미향이를 통해서도 은밀하게 부사를 매수하려고 힘을 써왔다. 그러나 청풍관아와 도가 사이에는 그동안 맺어온 관계가 너무나 견고했다. 본래 제목으로 쓸 나무도 옹이가 더 단단한 법이었다. 세상의 사람관계도 그러했다. 좋은 관계보다 잘못된 관계를 파내기가 더 힘들었다. 그런데 청풍관아와 도가 사이의 관계에 흠집을 내고 도려낼 기회가 온 것이다.

“이보게, 최행수 이렇게 큰돈과 귀한 물건을 내놓은 연유가 뭔가?”

김개동이 물었다.

장사꾼이든 일만 고을민이든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상대에게 자기 것을 줄 때는 아무런 이유가 없을 수 없었다. 어떤 것이고 반드시 대가를 바라고 그러할 진데 최풍원이 별 이야기가 없으니 김개동이의 입장에서는 찜찜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입안으로 굴러 들어온 떡을 뱉기에는 그 돈과 물건이 아까웠다.

“나리, 뭐가 그리 급하시오. 찬찬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요!”

최풍원이 뜸을 들였다.

“이 사람아, 난 앗쌀한 사람이여. 내 이제껏 살며 남의 물건을 한 번도 공으로 먹은 적이 없다네!”

김개동이가 자신의 청렴함을 내세웠다.

“부사영감 공덕비보다 아전나리 송덕비가 더 급하시옵니다!”

대를 이어 수십 년 동안 청풍에서 아전을 해오며 김개동이 청풍에서 어떤 사람인지 환하게 알고 있는지라 최풍원이 속으로는 비아냥거리면서도 입으로는 추켜세웠다.

“이 사람아, 내가 뭔 한 일이 있다고 송덕비를 세우겄는가. 하기야 우리 선친도 마을에서 송덕비를 세워주었으니, 나도 하나 세워줄라나…….”

김개동이가 입으로는 사양을 말하고 있었으나 내심으로는 자신의 송덕비를 은근히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낯 뜨거운 줄도 모르고 염치도 없는 인간이었다.

김개동의 아비, 두봉이 역시 제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아전 질을 평생 해먹었다. 그러다 두봉이가 나이가 들어 청풍관아까지 오가는 것도 힘들어지자 제 아들인 김개동에게 물려주었다. 한 집에서 삼대가 아전 질을 해먹다보니 걸음마 적부터 배운 것이 고을민들 등골 빼먹는 방법이라 김개동이 대에 와서는 아귀의 경지에 올랐다. 김개동이는 아전이 되자마자 자신의 땅을 부치는 소작인들을 모아 추렴계를 만들었다. 힘든 농사를 지으면서 힘들 때마다 서로서로 도와주면 얼마나 힘이 되겠느냐며 그 뜻은 부처보다 높고 높았다. 하지만 뜻만 좋았을 뿐 추렴계에서 하는 일은 지주인 자신의 사라사욕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추렴계의 폐악은 일일이 다 이야기하기도 벅차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 송덕비를 세운 일이었다. 김개동은 죽지도 않은 자신의 아버지 송덕비를 세우겠다며 소작인들을 불러 모아 돌 값을 내도록 강요했다.

“뜯다뜯다 더 뜯어갈 명목이 없으니, 이젠 제 애비 비석 값까지 뜯는구만!”

“그러니 어쩌겄나. 그거 안 내면 당장 내년 도지를 안 줄 텐데…….”

“식구덜언 쫄쫄 배를 곯고 있는데, 장리쌀 빌어다가 지주님 돌값 내야겄네!”

김개동의 땅을 부치고 있는 소작인들이 돌아가며 욕을 해댔다. 그것은 송덕비가 아니라 송욕비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