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 위세가 그러하다보니 웬만한 양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전은 중인이었다. 중인 처지에 양반을 쉬이 여기니 이전 같으면 볼기짝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일이었다. 이것은 조선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신분 구분이 엄연한 땅에서 최고의 윗자리인 양반이 이처럼 푸대접을 받는 것은 그들의 처신에도 문제가 많았다. 아무리 그렇지만 중인에 불과한 아전이 고을 수령을 좌지우지하고 양반 알기를 헌 짚신 짝처럼 여기는 것은 그들이 돈을 만지기 때문이었다.

“부사 영감님, 아무런 뜻 없이 관아에 바치는 것이니 용처대로 쓰시옵소서!”

최풍원이 돈 쾌를 받아달라며 한껏 머리를 조아렸다.

“진정 아무 뜻이 없단 말이냐?”

이현로가 다짐을 받듯 물었다.

“진정이옵니다!”

최풍원이 힘주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라 녹을 먹는 사람이 백성들 돈을 거저 받을 수 있겠느냐? 네가 그리 관아와 고을민을 생각해서 쾌척했으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지 말해 보거라!”

이현로가 거드름을 피우며 생색을 냈다.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부사 영감님이 부임하시어 우리 고을을 잘 다스려 즈이 같은 장사꾼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시고, 이렇게 돈이 남아 올릴 수도 있으니 그거면 족하옵니다!”

최풍원이 이현로를 치켜 올렸다.

“어허, 그 사람 참! 내가 뭘 그리 잘한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가?”

이현로가 계면쩍어했다.

“부사님, 떠나기 전 저기 인파가 많이 지나다니는 팔영루 앞에 송덕비라도 하나 세워드려야 할 일인데…….”

“어허, 그 사람 참! 별소릴 다 하누만!”

이현로가 앉은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더니 거듭해서 최풍원에게 소원을 말해보라 했다.

“부사 영감, 그 답례는 지가 알아서 할 테니 영감께서는 심려 놓으시요!”

김개동이가 이현로의 들뜬 행동을 주저앉히며 체면을 세워주었다.

“그리 하겠는가?”

이현로는 한양의 탄호대감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문제에다 송덕비 이야기까지 한꺼번에 좋은 일이 겹치자 목소리가 들떴다. 어쨌든 청풍도가에서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썩이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자 속이 후련해졌다. 게다가 받은 돈에 대한 답례까지 형방 김개동이가 떠맡고 하겠다니 이현로 입장에서는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었다. 하기야 이현로가 손을 댄다고 한들 할 수 있는 일도 별반 없었다. 다만 그가 청풍고을에서는 가장 높은 수장이다 보니 그가 결정하는 것은 요식행위일 뿐 실제 관아일은 아전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이보시게 대행수, 동헌 앞마당에 짐을 부려놓은 것은 아주 잘한 일이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부사 영감이 혼자 슬쩍 할 수도 있었다네. 마당에서 본 눈이 많으니 부사도 자네 입을 막기 위해 뭐라도 주려고 저러는 것 아닌가? 자네 그것까지 계산해서 그리 벌인 일 아닌가?”

부사 방에서 나오자 김개동이가 야비한 웃음을 흘리며 얄밉게 물었다.

“나리, 저 강가에서 장사해 입에 풀칠이나 하는 장사꾼 주제에 그런 머리가 있을 리 있겠습니까요? 미향이 얘기를 전해 듣고 그저 관아에 도움이 될까 해서……”

최풍원이 북진나루 쪽을 가리키며 말을 하다 얼버무렸다. 조조보다도 눈치가 싼 김개동이가 최풍원의 속을 환하게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자꾸 변명을 늘어나봐야 구차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 내게 주려고 미향이네 집에 맡겨놓은 것은 뭔가?”

김개동이가 본론을 물었다. 김개동이에게는 부사에게 바친 돈이나 물건보다도 최풍원이 자신에게 뭐를 가져왔는지가 더 궁금했다.

“나리 댁에야 부족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청풍고을 게 맘만 먹으면 모두 나리 것 아닙니까. 그래서 청풍고을에서는 구할 수 없는 그런 물건을 가져왔습니다요!”

“청풍고을에는 없다니 그게 뭔가?”

최풍원의 말에 귀가 솔깃해져 김개동이가 다가들었다.

“성냥이라고 들어보셨는가요?”

“석류황을 말하는 겐가?”

“맞습니다요!”

“그걸 어디서 구했는가?”

“어렵게 구한 물건입니다요! 그것만 있는 게 아니고…….”

최풍원이 김개동의 표정을 보며 뜸을 들였다.

“또 있다는 겐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