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완벽한 봄이 오고 있었다. 겨울은 적당히 추웠으며, 낭만적인 눈이 내렸으며, 입춘 지나고 우수 가까운 날 봄비도 적당히 내렸다. 겨우내 웅크렸던 대지가 기지개를 켜고 저마다 봄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들판에는 쑥 대궁이 올라오고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고 다람쥐와 꿀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자연뿐만 아니라 봄이 오면 긴 동면에 들어갔던 예술인들도 분주해지고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겨울이면, 예술인들은 공연이나 강의가 없는 농한기를 맞는다. 축제의 계절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세상이 된다. 방학에 들어서는 학교 역시 겨울은 강의, 강습이 끝나는 시즌이다. 농한기에 봄에 뿌릴 씨앗을 보관하고 농기구를 손보듯, 예술인들도 농부처럼 다가올 봄을 위해 예술의 씨앗을 보관하고 예술의 기구를 갈고 닦는다.

그러나 코로나19와 함께 온 봄은 세상을 마비시키며 먼저 다가온 봄의 전령을 옭아매었다. 코로나의 공포는 전 세계인을 전염시켰으며, 우리도 비껴갈 수 없었다. 오히려 국내 사정은 더 악화하고 있으며, 마스크 착용 없이 밖에 나가는 일도 죄스러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신종플루와 메르스 때처럼 별일이 아니라고 무심히 넘기기에는 세상이 변하였다. 최첨단 정보화 세상은 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안전불감증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렇다 보니 확진자의 일상이 노출되고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다. 신종플루와 메르스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만큼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 시스템이 좋아졌다는 증거이며, 국가의 신용도보다 국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급부로 식당, 택시 등 자영업자들은 손님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거리는 휴가철처럼 한산하며 교통체증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꽃 피는 봄을 맞는 이들도 생겼다. 흔하던 마스크는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 전쟁 통에도 돈 버는 사람이 생기듯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배달의 민족답게 식당에 가기보단 배달음식을, 슈퍼에 가기보단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고 있다. 이것도 돈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현재보다 더 악화한다면 세상 물정 모르는 예술인들은 예술을 버려야 할지 모른다. 

예술인들은 보릿고개를 또 넘어야 할 판이다. 공공기관은 휴관에 들어갔고 학교는 언제 개학을 할지 모른다. 수입원이 끊긴 예술인들은 막막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적은 월급이지만, 그조차 지급되지 못하는 단체도 부지기수다. 국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인을 위해 긴급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많은 이에게 혜택이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예술인들을 위해 지자제의 지원 대책도 필요하다. 대외 홍보용으로만 사용하는 문화예술이 아닌 지금이야말로 지역 문화예술을 위해 지자체의 역할이 절실한 때이다.

꽃 피는 봄이 오면 공연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낼 줄 알았더니 때아닌 신천지 바람만 맞고 있다. 언제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긴 겨울이 있어야 산수유꽃이 피어나듯이, 찬 눈 속을 뚫고 복수초 피어나듯이 현재 시련도 그렇게 지나가길 바란다. 꽃 피는 봄이 왔으니 너도, 나도 예술의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우고 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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