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용담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조금만 걸으면 우암산 정상 표지석이 나온다. 용담동 쪽으로 내려가는 성곽 길은 청주시에서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고 있는 흔적이 여기 저기 보였다. 목책을 세우고 줄을 쳐서 통행을 막고 군데군데 성곽 보호에 대한 문구가 보인다. 그런데 왜 수동 쪽에는 알림표지판이 없는지 궁금하다.

생각 없이 지날 때는 몰랐으나 이곳이 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걸으니 토성의 윤곽은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성 안쪽으로는 성벽이 완만하고 성 바깥쪽으로 성벽이 더 높고 거의 수직에 가깝다. 거기에 나무와 풀이 무성하다.

우거진 숲길을 걸어 내려가니 지금도 흔적이 뚜렷한 넓은 동문지가 나타났다. 여기서 토성의 한 줄기는 성내로 나뉘어 들어간 흔적이 보였다. 당산 방향으로 계속 걸어 내려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숲으로 둘러싸인 청주향교가 지붕만 보였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

성곽은 끝나지 않았는데 마을이 나타났다. 청주향교로 내려가는 골목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남쪽으로 길게 능선이 형성되어 있는데 민가와 채소밭이 있다. 그래서 용담동과 경계를 이루는데 이 능선에 성곽의 흔적이 희미해졌다. 지도에는 여기서 계속 당산토성으로 이어진다고 되어 있지만 흔적은 뚜렷하지 않다.

와우산토성 용도에 대해서는 추측하는 이론이 많다. 당시 청주 지방의 주요 관아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고, 또는 지방 권력자의 주거지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여지도서 청주목 산천조(輿地圖書淸州牧山川條)에 보면 청주읍의 보좌처로서 시내에 있는 청주읍성과 청주산성이 연결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청주산성은 바로 와우산토성을 의미할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 성은 다시 상당산성으로 이어진다.

와우산토성은 옛 사찰이 모여 있었던 흔적이 있기도 하다. 사찰의 유적지가 많은 것을 토대로 추정하면 사찰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고려시대 사찰 지대로 운천동 흥덕사지라든지 산남동 원흥사 주변을 드는데 이곳도 그런 곳으로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목암사지, 목우사지, 대성사지, 천흥사지, 흥천사지가 남아 있어 지금도 그윽한 목탁소리가 그치지 않는 듯하고, 흥천사 동종의 맥놀이 여음이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관음사를 비롯하여 보현사와 와우산 수도원도 이 부근에 있다.

와우산은 소백산에서 갈라져 나온 지맥으로 한남금북정맥의 한 봉우리인 상당산에서 남서쪽으로 갈려 나온 산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당산과 와우산 사이 바람매기고개가 매우 낮아서 독립된 산으로 생각된다. 이 고개를 넘어가는 청주 동부우회도로(2순환로)에 인조 터널을 만들어 상당산과 와우산의 맥을 형식적으로나마 잇고 있다. 이렇게 와우산의 혈맥을 이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그만큼 청주시민이 와우산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주시민들은 와우산을 대모산(大母山), 모암산(母岩山)이라 부르기도 하여 시민의 큰 어머니로 생각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름이 바뀌었으니 시급히 원래 이름을 찾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 수동 상좌골에서 용담동 가좌골로 통하는 도로가 개통되었다. 이 도로의 개통으로 와우산토성에서 당산토성으로 연결되는 부분에 교동터널이 뚫려 훼손 위기에 있다. 시민들의 반대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긴 했으나 이 터널을 지날 때마다 가슴 졸여야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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