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렇겠군요.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떼어먹게 되면 다른 고을 사람들이 더 세금을 바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요?”

“언제는 관리들이 백성들 생각하더냐? 그걸 목줄로 삼아 더 호달굴 생각만 하지!”

“대행수 어른, 저걸 갖다 바치면 청풍부사가 움직일까요?”

“부사 체모가 있지, 앉은자리에서 담박 그렇게야 하겠느냐. 하지만 소금 먹은 놈이 물 킨다고 먹은 게 있으니 생각이야 하겠지.”

“그래도 저렇게 많은 것을 주는데…….”

봉화수는 몸이 달았지만, 나귀에 올라탄 최풍원은 유람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느긋해보였다. 봉화수는 최풍원이 청풍부사에게 약채를 바치는 조건으로 이번 기회에 청풍도가와의 밀착관계를 끊고 북진여각과 좋은 관계를 맺게 해달라고 매달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최풍원은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왜, 저 많은 약채를 쓰면서 헛일이 될까봐 아까우냐?”

최풍원이 봉화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게 아니라…….”

봉화수가 속마음을 숨겼다.

“양반님네들이, 더구나 관아 관리님들이 우리같이 천한 장사꾼들의 말을 듣겠느냐? 들어주려고 하다가도 우리가 말을 하면 도로 뒤집을 것이다. 그저 우리는 우리 물건을 갖다 바치면서도 그들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게 장사꾼인 우리 처지다. 그러나 화수야 기다리거라. 아직은 우리 힘이 약해 처분만 기다리지만 머지않아 양반이고 관아고 부사고 우리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반드시 청풍도가 김주태를 꺼꾸러트릴 것이다!”

봉화수를 달래는 말이었지만 최풍원의 말 속에는 다짐이 들어있었다.

최풍원과 일행은 북진나루를 건너 청풍관아가 있는 읍내로 곧장 향했다. 팔영루를 지나 읍내로 들어서자 청풍 장날도 아닌데 긴 행렬에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고 내다보았다.

“풍원아, 고삐를 잡거라. 내려야겠다!”

동문대로를 따라가다 읍성 중심부에 다다르자 청풍관아의 정문인 이층의 금남루가 보였다. 그리고 금남루 삼문 사이로 언뜻 부사가 일을 보는 금병헌으로 들어가는 내삼문도 보였다. 그러자 최풍원이 나귀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금남루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걸어야 하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관아 앞에 있는 하마비에서야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하지만 아직은 좀 더 타고 가도 무방한 거리가 남아 있었다.

“대행수 어른, 몸도 좋지 않으실텐데 좀 더 타고가다 내리시지요?”

봉화수가 최풍원의 몸을 염려해 말렸다. 최풍원은 보연의 일로 여러 날 식음을 전폐한 채 자리에 누워 있었다.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곤할 터였다.

“아니다. 어서 잡거라! 행여 관아 관리나 부사라도 본다면 장사꾼 놈이 나귀를 타고 다닌다고 아니꼬와 할 것이다. 그리되면 모든 게 수포가 된다!”

최풍원이 서둘러 나귀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앞장서 걸었다. 금남루를 통과하자 널찍한 마당이 있고, 그 마당 끝으로 담으로 일곽을 이룬 내삼문이 보였다. 단층으로 된 내삼문 지붕 위로 위엄 있게 보이는 금병헌의 지붕이 겹지붕처럼 보였다. 금남루와 금병헌 사이의 마당에서는 훈련을 하는 것인지 관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무언가를 하다 멈추고 줄나래비를 이루며 금병헌으로 들어가는 최풍원 일행을 바라보았다. 내삼문을 지나 금병헌으로 들어서자 다시 안마당이 나타나고 금병헌과 함께 응청각과 한벽루가 보이고 관아의 부속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

“최 행수 왔는가?”

금병헌 마당으로 들어서는 최풍원을 보고 형방 김개동이가 반색을 했다.

“예, 형방어른 그동안 적조했습니다요. 그간 무고하셨읍죠?”

최풍원이 깊이 허리를 굽혔다.

“나야 장 그렇지만, 최 행수는 통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장사일이 매우 바쁜가보이?”

김개동이가 웃는 낯으로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뼈가 있었다. 최풍원은 그 뼈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 같은 것이 바쁘면 나랏일 보시는 형방나리만큼 바쁘겠사옵니까. 괜히 쓸데도 없는 일로 방울소리 울리며 돌아치는 것이지요.”

최풍원이 김개동의 말뜻을 모르는 척 짐짓 딴소리를 했다.

“그건 다 뭔가? 듣자하니 북진여각 곳간에는 없는 것이 없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인사도 차려야지 혼자만 그리 먹다가 배터진다네!”

김개동이가 짐꾼들이 부려놓은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노골적으로 최풍원에게 속셈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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