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병선 기자]  엽전 한 관이면 열 냥이었다. 엽전 열 냥을 한 꾸러미로 묶은 것을 열 냥이라 했다. 그런 꾸러미가 백 개니 일천 냥이었다. 천 냥이면 최고의 질 좋은 상상미를 이백 가마나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배영학의 배에 실려 있던 서양 물건 또한 정해진 값이 없어 그렇지 현물거래한 특산품을 기준해서 산정하면 상상미 일백 가마는 될 터였다. 그렇다면 돈으로 치면 일천오백 냥이나 되는 돈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곳간에 쟁여놓은 최고의 특산품을 열 짐이나 지게에 지워놓으라 했다. 이것까지 모두 합치면 이천 냥은 족히 될 만한 큰돈이었다. 최풍원은 그 돈을 청풍부사 이현로에게 약채로 쓸 모양이었다. 그러니 봉화수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대행수 어른?”

봉화수는 아무래도 최풍원이 보연이 일로 상심해서 마음을 다친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생겼다.

“단 솥을 식히려면 물이 차고 넘쳐나도록 단번에 부어야 해! 지금 청풍부사 똥끝이 얼마나 타겠느냐. 그걸 시원하게 해결해주려면 그 정도는 해야 약발이 넘쳐흐르겠지!”

최풍원이 봉화수의 의구심을 잠재우기위해 자신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래도 대행수 어른, 당장 여각에서도 써야할 용처가 수두룩한데 너무 과한 게 아닌가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니다. 그렇게 준비해놓거라!”

최풍원이 봉화수의 말을 무시하고 무조건 따를 것을 명했다.

“알겠습니다. 대행수!”

“그리고 화수는 나를 따라 관아에 가자꾸나.”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대동할 것을 와 동행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는 짐꾼들 외에도 강수와 동몽회원들까지 불러 모았다.

북진여각에서 장마당을 지나 나루로 내려가는 언덕길에는 모처럼만에 줄나래비를 이룬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청풍관아로 가는 북진여각 사람들이었다. 최풍원이 나귀를 타고 길머리에 서고, 지게를 진 짐꾼들이 그 뒤를 따랐다. 짐꾼들 지게마다에는 항아리, 섬, 보퉁이, 쾌가 잔뜩 지워져있었다.

“대행수 어른, 김주태도 그렇지만 청풍부사도 몹시 다급한 형편임이 틀림없습니다. 서양 물건을 가져왔던 배 선주 말을 빌리면 청풍도가 놈들이 저 물건을 받아 이현로에게 바치려 했답니다.”

봉화수가 짐꾼들이 지고 있는 지게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최풍원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뭐가?”

“청풍도가 말입니다.”

“청풍도가가 왜?”

“대궐에서 벌인 대공사에 돈이 필요해 그런다면 돈이나 곡물이 절실해 청풍도가를 닦달했을 것인데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없어도 괜찮을 저런 물건을 청풍도가에서 부사에게 바치려했다는 것이 선뜻 수긍이 되지 않습니다요.”

봉화수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청풍도가 김주태가 미친 짓을 했다는 얘기냐?”

“청풍부사가 호달구니 하도 다급해서 혼이 빠진 게 아닌가 해서…….”

최풍원이 봉화수의 이야기기를 들으며 입가에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봉화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웅댕이를 보지 말고 큰물을 보거라! 웅댕이만 보면 그 안에 든 물고기만 보인다. 그렇지만 큰물을 보면 온갖 고기들이 살고 있다. 청풍도가만 보지 말고 가들이 누구와 손을 잡고 있는지를 봐라. 청풍도가 위에는 청풍부사가 있고 그 위에는 대궐의 탄호대감이 있지 않느냐. 청풍도가에서 청풍부사에게 바치면 그게 결국에는 어디로 가겠느냐?”

“탄호대감이요.”

“탄호대감이 대궐 공사가 급박하니 청풍부사에게 곡물을 올려 보내라 하고, 청풍부사는 또 청풍도가에 닦달을 했겠지만 그건 그저 명목에 불과한 것 아니겠느냐? 탄호대감은 곡물이든 뭐든 상관치 않을 것이다. 왜냐, 대궐 공사는 누구를 쥐어짜서라도 어떻게든 마무리를 할 것이고, 탄호대감은 이번 기회에 대궐 공사를 빌미로 자기 뱃속만 차리는 것이 실속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청풍부사는 모를 것이며, 청풍도가에서는 모르겠느냐? 그러니 지금 청풍에서 그만한 곡물을 모으기는 어려울 터이고 서양 귀한 물건을 대신 바쳐 입막음을 하려 한 게지. 탄호대감 입장에서도 부피만 큰 곡물 섬을 떼어먹는 것보다, 부피도 작고 값나가는 귀한 서양물건을 받아 착복하는 게 표시도 안 나고 훨씬 쉽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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