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도가 사람들이 하는 말이 내 물건을 받아 청풍 원님한테 바치려 한다고 하더이다.”

“값도 치루지 못해 팔아서 준다고 했다면서 원님한테 바친다고 하더란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더이다. 그리고는 이번에 원님과 틀어지면 보통 낭패가 아니란 말까지 덧붙이더이다.”

“원님과 틀어진다?”

배영학의 이야기를 들으며 봉화수는 짚히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 청풍관아나 청풍도가나 몹시 다급한 처지에 놓인 것은 분명했다. 그것은 미향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와도 상통했다. 청풍부사 이현로는 지금 이 나라의 최고 실권자인 탄호대감으로부터 부여받은 물품을 올리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관아 창고에 그런 곡물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관아와 도가가 서로 짜고 나라 공물을 빼내 고을민들을 대상으로 고리의 이자놀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을민들에게 빌려준 장리쌀은 가을추수 때나 돼야 거둬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대궐에서 큰 공사를 벌이며 급전이 필요하자 탄호대감은 팔도의 수령들에게 관아에 비축된 곡물을 올려 보내라고 통지를 보냈다. 몸이 단 이현로는 청풍도가 김주태를 닦달했다. 김주태 역시 청풍도가에서 개별적으로 공납하는 물건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차에 청풍부사 이현로까지 관아에서 빌려간 비축미를 당장 갚으라 하니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아마도 청풍도가 김주태는 배영학의 물건을 받아 청풍부사 이현로에게 약채로 쓰려고 했던 것이 명해졌다.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변칙을 쓸 수밖에 없었다. 김주태는 이현로로부터 압박을 받으면서도 현실적으로 해결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한양에서도 구하기 힘든 귀한 서양물건을 받아 부사에게 바침으로써 우선 입막음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현로 역시 탄호대감의 지시를 받고 그것을 당장 실행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주태를 몰아붙이는 것은 조이면 뭐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일말의 기대감에서였다. 이현로 역시 그것을 가지고 탄호대감의 입막음을 할 생각이었다. 배영학과 미향이의 이야기를 맞춰보니 청풍도가의 꿍꿍이가 드러났다. 봉화수는 이번 기회에 청풍관아와 청풍도가 사이의 밀착된 관계에 흠집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 선주, 고맙소이다!”

배영학이가 전해준 이야기는 참으로 귀한 정보였다. 어찌 보면 곡물 수백 석을 팔아 챙긴 이득보다도 더 큰 보탬이 되는 이야기였다. 봉화수가 진정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아니오. 이런 귀한 물건을 넘겨주어 외려 내가 더 고맙소이다. 앞으로도 우리 서로 좋은 관계를 맺어봅시다!”

“물론이오! 배 선주가 신의를 지켜주고 성심으로 해준다면 언제까지고 환영이오!”

봉화수와 배영학이가 북진나루 선창가에서 굳게 약조를 했다.

배영학이가 물건을 싣고 북진나루를 떠나자 봉화수는 곧바로 최풍원을 찾아갔다. 며칠 사이에 최풍원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보연이를 잃고 상심이 큰 탓이었다.

“대행수 어른, 아무래도 긴한 문제라 상의를 해야 할 것 같아…….”

봉화수가 최풍원의 야윈 얼굴을 보며 송구스러워 했다.

“아니여. 지금 우리 여각 일이 중할 때인데 이러고 있어 미안허네. 그렇잖아도 오늘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날 참이었네. 그래 무슨 일인가?”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대행수께서 직접 나서서 처결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봉화수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고 최풍원이 직접 청풍부사 이현로를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번 기회에 청풍부사 이현로와 도가 김주태 사이를 갈라놓자 이 말이지?”

“정말 좋은 기회가 온 듯 싶습니다. 만약 일이 잘 성사되면 저들에게는 맹독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는 보약이 될 것입니다요. 약채는 청풍도가처럼 귀한 서양 물건을 챙겨놓을까요?”

“약채를 쓰려면 먹은 놈도 미안할 정도로 아주 되게 써야지. 서양 물건도 챙겨놓고, 곳간에 쟁여놓은 특산품들이 있지?”

“예.”

“최고로 좋은 특산품으로만 골라 열 짐만 지워놓게!”

“열 짐이나요?”

봉화수가 놀라 되물었다. 최상품 열 짐이라면 꽤나 많은 돈이었다.

“엽전도 백 관 지워놓게!”

“엽전 백관 까지요?”

봉화수가 놀란 입을 다물기도 전에 최풍원이 엽전 백 관까지 지게에 지워놓으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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