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내 배에 있는 물건, 저기 특산품과 물물교환을 하면 어떻겠소이까?”

배영학이가 곳간에 쌓여있는 물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저 물건들을 한양으로 가져가면 큰 재미를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한양이야 팔도 특산품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라 구할 수 없는 물건이 없었지만 지금 북진여각 곳간에 쟁여져있는 물건은 눈 어두운 뚝눈이 봐도 잘 갈무리된 귀한 것들이었다. 배영학은 탐이 났다. 장사꾼이 좋은 물건을 보면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생리였다.

“글쎄올시다. 그 물건들은 이미 선약자가 있어서…….”

이미 물건 갈 곳이 정해져 있어 불가하다며 봉화수가 말끝을 흐렸다. 그럴수록 배영학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선약자라면 매수를 한 것도 아니잖소?”

배영학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약속을 먼저 해놓았을 뿐 물건 값을 치룬 것은 아니니 자신에게 넘겨주면 안 되겠냐는 부탁이었다.

“장사꾼에게 돈보다 중한 것이 약조요. 나는 그것을 깰 생각이 없소이다!”

봉화수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가 그 사람과 약조한 금보다 곱절을 더 쳐줄테니 나에게 저 물건을 넘겨주시오!”

배영학이가 며칠 전 황강 문화마을에서 봉화수가 했던 말을 똑같이 했다. 봉화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청풍도가와 먼저 선약을 해놓고도 곱절을 주겠다는 내 말에 약조를 깼지만 나는 그리 할 수 없소. 장사는 돈보다도 신의가 더 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봉화수가 배영학의 표리부동함을 질타하며 신뢰를 강조했다.

“이보시오! 장사가 그런 것 아니오.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면 그쪽으로 물건을 넘기는 건 장사꾼들이라면 누구나 그러는 것 아니오? 장사가 무슨 도덕군자요?”

배영학은 비위가 상했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봉화수의 기분을 건드릴까 염려해서인지 잔뜩 조심스런 목소리였다.

“장사가 도덕군자는 아니더라도 서로 간 신뢰가 깨진다면 어떻게 거래를 지속할 수 있겠소이까?”

봉화수의 말 속에는 앞으로도 계속 배영학과 거래를 하고 싶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배영학을 다잡기 위해 부러 역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어찌 했으면 되겠소이까?”

배영학은 방법을 몰라 답답해하는 표정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 해도 당치도 않은 금에 팔고, 약조한 거래를 손바닥 뒤집듯 한다면 배 선주는 그 사람과 또 만나고 싶겠소이까?”

이번에는 봉화수가 자신의 의도를 배영학의 손바닥에 쥐어주었다.

“알겠소이다. 내 배에 실려 있는 물건 처음 청풍도가와 약속한 금에 넘겨주겠소이다. 그러면 되겠소이까?”

그제야 배영학이가 봉화수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렇게 해도 배영학으로서는 제 값을 받는 것이었고, 만약 이 흥정이 성사되지 않아 돈으로 받는다 해도 손해날 것은 전혀 없었다. 더구나 만약 현물거래가 이루어진다면 북진여각에서 받은 특산물을 한양으로 가져가 몇 곱절을 남길 수 있었으니 시골 장사꾼한테 자존심이 구겨지더라도 굽실거리는 것이었다.

“일단 이 물건은 이미 약조된 것이니 내줄 수가 없고, 내가 우리 임방 객주들한테 기별을 해볼 테니 서너 날만 기다려 보시구려!”

봉화수가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북진여각에 물건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북진여각에는 배영학에게 보여주고 있는 바깥채 곳간 말고도 몇 곳의 곳간이 또 있었다. 그런데도 배영학에게 기다리라며 확답을 주지 않는 것은 그를 더 조바심 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약조한 물건이 사나흘 안에 가져갈 것이 아니라면 내게 먼저 넘기면 어떻겠소이까? 현물로 준다하니 청풍도가보다 일 할을 더 깎아주겠소이다.”

배영학은 혹시라도 기다리는 중에 잘못될까를 염려하여 잔뜩 몸이 달았다. 이제는 청풍도가와 약속했던 금에서도 일 할을 제해주겠다며 매달렸다.

“청풍도가에서는 물건을 받아 판 다음에 값을 치룬다 하였고, 나는 돈으로 당장 주겠다 하였소이다. 그러니 그런 것은 감안해서 다시 흥정해야하지 않겠소이까?”

“그럼 어찌 했으면 좋겠소이까?”

배영학이가 봉화수에게 물었다. 주객이 완전히 바뀐 꼴이었다. 이제는 봉화수가 칼자루를 잡은 셈이었다.

“삼 할에 합시다!”

봉화수가 배영학에게 삼 할을 제시했다. 장마당에서 장꾼들에게 이익금을 얹어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고 장사꾼들끼리 현물매매를 하면서 삼 할을 깎는다는 건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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