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걸 한 번 보겠소?”

배영학이가 뱃고물에 실려 있는 짐들 중 하나를 풀더니 인절미만한 곽을 꺼냈다. 그러더니 그것을 열어 속에서 나뭇가지 같은 것을 꺼냈다.

“그게 뭐요?”

“잘 보시오?”

배영학이가 나뭇가지를 뱃바닥에 그었다. 순간 나뭇가지 끝에서 불이 타올랐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들 놀라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게 뭔 물건이오?”

봉화수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인지라 어안이 벙벙해 물었다.

“이게 도깨비불이라 하는 것이오!”

“도깨비 불?”

“일본에서는 인촌이라 부르오!”

“그럼 그게 왜에서 온 물건이란 말이오?”

“그렇소이다.”

“왜 물건이 어떻게 예까지 올 수 있단 말이오?”

“관헌들의 눈을 피해 뒷구멍으로 들어온 것들이지요. 한양 장마당에는 이미 이런 것 말고도 대국을 통해 서양 물건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소이다. 중국이나 바다 건너 왜국에서 들어오는 서양 물건들인데 수월찮게 거래되고 있소이다.”

“그럼 그 도깨비불은 뭣에 쓰는 물건이오?”

“부시라 보면 될 것이오!”

아직도 대부분의 민가에서는 부싯돌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에서 살림을 하는 아녀자들의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불씨를 잘 관리하는 것이었다. 불은 매일처럼 써야하는 꼭 필요한 것이기에 집집마다에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아녀자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간수하고 있었다. 만약 불을 꺼뜨리면 쑥 이파리를 비벼 만든 부싯깃을 부싯돌에 올려놓고 부시로 쳐서 불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불을 만들려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않으면 이웃집으로 불씨를 얻으러 다녀야했다. 자주 불씨를 꺼뜨려 이웃으로 불씨를 얻으러 다니는 아녀자는 그것도 흉이 되었다. 동네에서는 그런 아녀자에게 ‘뒤퉁 맞은 여편네’, ‘게을러빠진 여편네’, ‘살림도 지질이 못하는 여편네’라며 험담을 해댔다. 그런데 저런 도깨비불만 있으면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불덩어리를 화로에 묻어둘 필요도 없었고, 설사 꺼뜨렸다 해도 금방 불을 살릴 수 있었다. 부엌 일 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저녁 등잔불을 밝히는데도 저 도깨비불만 있으면 불시를 들고 왔다갔다 허둥댈 필요도 없었다. 살림살이를 하는데 참으로 편리한 물건이었다. 

“그래 그 도깨비불이 얼마나 하는 거요?”

“이거 한 곽에 쌀 한 말이요.”

“쌀 한 말요! 고거 한 곽에?”

봉화수가 호되게 비싼 값에 놀라 반문했다.

쌀 한 말이면 오 전이었다. 인절미 한 조각만한 것 열 곽이면 쌀이 한 섬이었다. 편리하고 편한 물건이기는 했지만 일반 민가에서는 부싯돌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사용할 수 없는 도깨비불이었다.

“한양에서는 대갓집이나 부잣집에서 많이들 쓰고 있는 물건이오. 비싸기는 해도  한 번 쓰면 끊기 힘든 물건이지.”

“그러긴 하지만 여기에서 그걸 쓸 만한 집이 몇이나 될까. 다른 물건들은 어떤 것이 있소이까?”

“석유라는 것도 있소이다.”

“그건 또 뭘 하는 물건이오?”

“기름이오.”

“그깟 기름이야 여기도 흔한데 뭘 하려고 싣고 왔단 말이오?”

“이건 먹는 게 아니오!”

“먹지도 못한다면 약으로 쓰는 것이오?”

“그것도 아니오. 이 기름은 불을 밝히는데 쓰는 기름이오.”

“불을 밝히는 기름이야 참기름도 있고, 들기름도 있고, 콩기름도 있고, 피마자기름도 등잔에 쓰는데 그거 석유라는 기름을 누가 산다오?”

“이 기름은 그런 것과 다르오.”

배영학이가 호리병을 들어 접시에 석유라는 것을 따랐다. 그러고는 접시 전에 심지를 걸쳤다. 배영학이 도깨비불을 켜더니 심지에 갔다댔다. 그러자 불이 일순간에 붙으며 순식간에 타올랐다. 지금 민가에서 쓰고 있는 등잔기름은 농작물이나 식물을 키워 거기에서 얻은 열매로 추출한 것들이었다. 이런 기름들은 직접 불을 갖다 대도 불이 붙지도 않아 등잔을 밝히려면 여간 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석유라는 저 기름은 불을 대자마자 순식간에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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