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게 장사꾼이 많아져서 그런 것이겠소? 나라에서도 장사의 중함을 알았기 때문 아니겠소이까?”

“그건 또 무슨 얘기요?”

“생각해보시오. 땅덩어리는 그대론데 사람은 점점 늘어나니 그 인총이 다 뭘 먹고 살겠소. 그런데 땅이 없어도 장사는 할 수 있고 그게 밥을 먹게 해주니 나라님 쪽에서 보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오. 게다가 장사꾼들을 통해 세금도 거둬들일 수 있으니 일거양득 아니겠소. 그러니 나라에서도 제일 불상놈으로 여겼던 장사꾼들의 숨통을 좀 터준 것이겠지요.”

“죽은 채제공을 여기에 와 만나는구려!”

배영학이가 봉화수의 말을 듣고 칭찬인지 비아냥거리는지 것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체제공은 재상으로서는 드물게 장사를 장려한 사람이다. 조선의 신분계급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양민과 천민을 구분하는 양천제에서 후기로 가며 양반과 천민으로 구분하는 반상제로 변한다. 이외에도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따라 사·농·공·상으로 신분을 구분하였는데, 선비, 농부, 공장, 상인으로 이를 사민이라 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 노비는 제외되었다. 사민은 노심자라 하여 정신노동자인 선비가 다스리는 자가 되고, 노력자라 하여 농민, 공장, 상인 같은 육체노동자가 피지배자가 되었다. 이런 피지배자 중에서도 상업은 말업이라 하여 상인은 가장 천대를 받았다.

조선이 전통적인 농업국가로서 농업을 장려하고 있었지만 상업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백성들이 자급자족을 한다고 해도 그건 의식주 정도일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식주 문제 외에도 필요한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상업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은 개국 초부터 운종가에 시전을 설치하고 허가를 받은 시전상인들에게만 특정 물건을 팔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그 대신 시전상인들은 대궐의 왕실이나 관청에서 필요한 물품과 중국에 보낼 진상품을 조달할 의무를 져야 했다. 이들 시전상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선전(비단), 저포전(모시·베), 면포전(무명), 지전(한지), 면주전(명주), 어물전 등 여섯 종류의 물건을 팔 수 있는 권리였다. 이를 보통 육의전이라 불렀다.

이러한 상업 체제는 개국 이후 한참동안 잘 지켜지며 이어졌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 이후 조선 후기로 내려오며 농사법의 발달로 잉여생산물이 늘어나고 시장 경제가 발달하며 사상인들의 상업 활동이 크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상인들과 시전상인들 사이에 상권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전상인들은 자신들이 대궐과 관청에 공납하는 물품을 빌미로 사상인들을 단속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당시 조정에서는 양란으로 극심한 재정란을 겪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조세를 마련할 방안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였다. 당연히 시전상인들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시전상인들의 여섯 가지 물건은 사상인들은 팔수가 없었다. 만약 개인이 사사로이 이런 물건을 팔다 들키면 시전상인들은 이들을 잡아다 직접 치도곤까지 할 수 있었다. 사상인들로부터 자신들의 상권을 보호받기 위한 독점판매권인 셈이었다. 이것을 금난전권이라 하였다.

채제공은 시전상인들이 누리고 있던 금난전권을 혁파한 사람이다. 이대쯤에는 시전상인들의 권력도 대단했다. 이들은 대궐의 높은 권력과 결탁하여 그들에게 뒷돈을 대주며 막강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만 말업을 하는 장사치일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엄청난 부를 배경으로 웬만한 벼슬아치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러한 시전상인들의 실세를 잘 알면서도 혁파를 한 것은 이들의 백성들 생활에 미치는 폐단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상업이 점점 발달하자 시간이 흐를수록 시전의 숫자가 불어났고, 종당에는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모든 물품을 시전상인들이 독점하며 사상인들의 장사까지 단속하고 금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시전상인들은 자신들끼리 결탁하여 물건들을 매점매석하여 물가를 앙등시켜 폭리를 취함으로써 백성들의 생활을 곤경에 빠뜨렸다. 채제공도 이러한 폐단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시전상인들이 높은 벼슬아치들과 결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그러다 그가 좌의정에 오르자 이를 실시한 것이었다.

한양의 운종가와 난장들, 그리고 사대문에 방이 내걸렸다. ‘육의전 외에 모든 시전상인들이 사상인들의 상업을 단속·금지하는 금난전권을 모두 혁파한다’는 방이었다. 이른바 신해통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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