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요새 한양에도 끼니 거르는 사람이 숫한데 저런 산속에 곡식이 넘쳐난다니 저기가 도성보다도 낫구려.”

아까처럼 업신여기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배영학은 미끼지 않는다는 투였다.

“아니! 한양에도 밥 굶는 사람이 있단 말이유?”

배영학의 이야기를 동냥질하던 황칠규가 깜짝 놀라며 끼어들었다.

“그럼 한양에 산다고 모두들 배 두드리며 사는 줄 알았소이까?”

“팔도 물건은 몽땅 다 한양으로 걷어 가는데 그게 다 어디로 가고 사람들이 굶는답디까?”

“한양으로 다 올라가면 그게 다 백성들에게 간답디까?”

배영학이가 황칠규의 말투를 흉내 내며 되물었다.

“그럼 그게 다 어디로 간답디까?”

“저기 저 벌떼기는 고을 사람들 모두의 것이오?”

배가 황석나루를 지났다. 이제 허탄만 거슬러 올라가면 왼쪽이 북진나루였다. 강을 경계로 북진나루 맞은편이 청풍 관아가 있는 읍리였다. 비봉산 자락이 흘러내리다 구릉과 들판을 이루고 들판 끝자락에 강가에 접하여 제법 규모 있는 고을이 청풍 읍리였다. 읍리에는 청풍 관내에서는 제일로 벌이 넓은 들판이 있었다. 배영학이가 그 들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땅은 거개 다 청풍도가 김주태 땅이오. 아마도 청풍에서 그보다 더 부자는 없을 것이오!”

“청풍도 그 부자가 땅을 움켜쥐고 사람들한테 행세를 하지요? 그 사람이 소작인들한테 받은 곡물을 광에 첩첩이 쌓아두고도 고을민들 어렵다고 고루고루 살펴가며 나눠주더이까? 외려 다급한 사람 등쳐서 지 속셈만 더 채우려 할걸요. 한양도 매 한가지요. 팔도 산물들이 다 모여 들지만 벼슬아치들과 부자들이 그걸 움켜쥐고 지들 입맛대로 부려먹으니 호락호락 말 잘 듣는 놈은 얻어먹고 그렇지 못한 놈은 굶을 것 아니겠소이까? 그러니 먹는 놈보다 못 먹는 사람이 더 많지 않겠소?”

배영학이가 장황하게 설명했다.

“한양이나 시골이나 있는 놈덜 지랄 떠는 것은 한가지구려!”

황칠규가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매 한가지 아니겠소이까?”

“배 선주, 요즘 한양 사정은 어떻소이까?”

봉화수가 물었다.

“사람살이를 묻는 거요, 아니면 장사를 묻는 거요?”

“요즘 한양 장사는 어떤가 해서 묻는 것이오.”

“불과 수 년 전과 비교해도 장사 판도가 확 달라졌지요.”

“어떻게 달라졌소이까?”

“한양에도 사방에 큰 난전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장사꾼들도 말도 못하게 늘어났소이다.”

“그렇게 늘어난 연유가 뭐이까?”

“왜겠소. 시골에서 먹고 살 일이 막막해 한양으로 왔는데 팔도에서 다 몰려드니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뭘 해먹고 살겠소. 기껏해야 소작을 하거나 남의 집 머슴살이 밖에 없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그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소. 일거리는 귀하고 일꾼은 천지사방에 널려있고, 그러다보니 그 전에 한 사람 쓸 새경으로 너덧을 쓸 수 있게 됐으니 부자들만 신이 났지요. 그나마 홀몸인 사람은 제 입 하나만 끄스르면 되지만 가솔 딸린 가장들은 그걸 받아 살 수 없으니 어쩌겠소이까. 그러다보니 나무작대기라도 들고 죄다 장마당으로 나오다보니 장에는 장사꾼이 더 많소이다.”

배영학이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장사꾼이 갑자기 늘어나자 장마당 분위기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우선 당장 달라진 것은 장사꾼들 움직임부터였다. 예전에 들이던 공력에 몇 배는 더 쏟아부어야 물건을 팔고 이득을 남길 수 있었다. 예전에는 내 물건을 차려놓고 앉아만 있으면 장꾼들이 찾아오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 예전처럼 그렇게 했다가는 굶어죽기 십상이었다. 워낙에 장사꾼들이 많다보니 똑같은 물건을 파는 장사꾼도 부지기수로 많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니 내 물건을 팔려면 남들은 얼마에 파는가를 일일이 알아봐야 했고 그보다 낮은 값을 매겨 팔아야했다. 예전에 비해 힘은 배로 드는데 이득은 박했다.

“그래도 하나 좋아진 것은 있소.”

죽는 소리를 하던 배영학의 표정이 갑자기 달라졌다.

“그게 뭐요?”

“내가 처음 장사를 배울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얼마 전까지도 장사꾼은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소이다. 그런데 장사꾼들이 갑자기 늘어나며 우리를 쳐다보는 그런 눈길이 달라진 것이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