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리오. 돈을 보여주시오!”

장사꾼 앞에서는 돈이라면 친구도 적도 없었다. 청풍도가 놈의 돈 소리에 배영학도 봉화수에게 돈을 보여 달라고 했다.

“하기야, 백말이 무슨 소용이겠소이까. 황 객주님?”

봉화수가 옆에 앉아있던 황칠규에게 눈짓을 했다.

“얘들아!”

황칠규가 벌떡 일어나며 동몽회원을 불렀다. 그리고는 방문을 벌컥 열어 제켰다. 방문 밖에는 걸빵을 어깨에 멘 동몽회원들이 여나뭇 서있었다.

“저게 다 돈이란 말이냐?”

동몽회원들이 어깨에 짊어진 궤를 보고 청풍도가 놈이 놀라 물었다.

“저게 다 돈이란 말이오?”

배영학도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물건을 넘기면 지금 당장 저 돈궤를 넘겨주겠소이다!”

“알겠소! 지금 당장이라도 넘겨 드리리다!”

배영학이가 북진여각으로 물건을 넘겨주겠다며 마음을 굳혔다.

“배 선주도 앞으로 우리 도가와 거래할 생각은 아예 마슈! 그리고 네 놈도 조심하그라! 어디서 만나면 혼구멍이 내줄테니!”

흥정이 실패하자 청풍도가 놈이 패악을 떨며 나가버렸다.

“배 선주, 일이 성사되고 물건도 내려야하니 함께 우리 북진으로 갑시다!”

봉화수가 배영학에게 북진으로 갈 것을 권했다.

“물건을 내리려면 당연히 가야지요!”

배영학이도 흔쾌히 대답했다.

참으로 좋은 때였다. 사방이 푸르고 바람 또한 부드러웠다. 사시사철 중 이맘때만큼 좋은 철은 없었다. 황강에서 출발한 배가 한수·서창·진목·방흥나루를 지나자 비봉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일 때는 흙 두루미처럼 거뭇거뭇하게 보이던 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녹음 때문인지 날아가는 청학으로 변했다. 두 사람은 뱃전에 서서 눈앞으로 펼쳐지는 주변 풍광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런 곳에서는 뭘 해먹고 사오?”

배영학이가 비봉산 자락을 타고 내려오다 강가 구릉에 자리 잡은 질골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 ‘산골 무지렁이들은’하고 업신여김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청풍 관내가 평지보다는 산지가 많았지만, 특히 청풍의 다른 마을보다도 질골은 산이 특히 깊은 곳이었다. 집실, 제장골, 옹기골, 어둠골이라는 마을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척박한 곳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청풍의 다른 마을에서도 은연중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타관 사람이 그런 투를 보이자 봉화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배 객주, 저래봐도 저 동네 알짜배기요!”

“내 참, 저런 곳에 뭐가 난다고 알짜배기란 말이오?”

배영학은 질골을 바라보며 여전히 업신여기는 투였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 빈 놈이 숫하오이다. 저기는 겉은 저렇지만 언간히 비단 옷 입은 놈보다 더 실하다오.”

봉화수가 배영학의 입성을 위아래로 살피며 빙긋거렸다.

“나보고 하는 소리요?”

배영학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봉화수가 이참에 배영학의 기를 꺾어놓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배 선주 입은 게 비단이나 되오이까. 기껏해야 배선주는 강을 따라 한양에서 여기만 다니지만 저들 장사길은 배 선주의 몇 곱절은 될 거요!”

“저런 골짜기에서 뭘 해서 그 멀리까지 장사를 다닌단 말이오?”

“고령토요!”

“그럼 저기서 옹기를 만든 단 말이오?”

“만들기만 하는 줄 아오? 저기 옹기들은 워낙에 소문이 나 청풍 인근은 말할 것도 없고 제천·단양과 남한강 최상류인 강원도 영월·정선, 죽령 너머 경상도 풍기·영월까지 발이 뻗히고 있소이다. 아는 장사꾼은 선돈을 미리 맡기고 항아리를 선점한다오!”

“저기 항아리가 그렇게 멀리까지 간단 말이오?”

배영학의 목소리가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그럼 저기서 옹기를 만든 단 말이오?”

“그깟 게 대수요? 아마도 올 가을 항아리를 구하려고 장사꾼들은 이미 지난해 옹기장들한테 값을 치뤘을 것이오.

“그렇게까지?”

“황 객주님이 더 잘 아니 말씀 좀 해보시구려!”

봉화수가 뒷전에 서있는 황칠규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마 질골에 사는 가마 집들마다 옹기 값으로 받은 곡물들이 그득그득할걸요. 청풍 관내에서도 사철 양식 걱정 안하고 사는 곳은 절골 뿐일걸요.”

황칠규가 봉화수의 속내를 알아채고 한술 더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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