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배영학은 청풍도가보다도 무조건 배를 주겠다는 봉화수의 제안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장사꾼이 단 한 푼을 더 준다 해도 열 일 제쳐두고 달려가는 법인데 곱접을 쳐준다고 해도 흔들림이 없는 배영학을 보며 내심 봉화수는 당황스러웠다.

“무슨 물건인줄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사겠다는 것이오?”

배영학은 봉화수의 제안을 믿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배영학으로서는 당연한 물음이었다. 하다못해 짚신 한 짝을 산다 해도 코는 잘 빠졌는지, 뒤축은 편한지, 볼은 넓지 않은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배에 실려 있는 것이 쌀인지 보리인지 소금인지 물목도 알지 못하면서 무조건 배로 금을 쳐주겠다고 하니 배영학이 덥석 물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봉화수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그 물건이 뭐든 상관없소이다. 그 물건이 청풍도가로 넘어가지만 않으면 됩니다!”

“아니! 니 놈이 나와 무슨 철천지원수가 졌다고 우리 일을 방해하는 것이냐?”

봉화수의 말을 듣고 있던 청풍도가 놈이 핏대를 세웠다.

“단지 청풍도가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슨 물건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곱절의 돈을 치루겠단 말이오?”

배영학도 어이없어 했다.

“이보시오 배 선주,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저자의 말을 곧이 듣지 마슈! 그 물건 저들에게 넘겼다가는 팔지도 못하고 다 공중에 버리게 되고 말 것이오! 북진은 그런 물건을 팔만한 능력도 되지 못하오.”

청풍도가 놈의 말을 들으니 배영학과의 사이에 이미 어느 정도 흥정이 오고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배영학의 물건을 청풍도가에서 위탁받아 대신 팔아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한양같은 도읍에서는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니 물건을 사고 파는 장꾼들이 직접 물건을 사고 팔았다. 또 각 고장의 향시에서도 보주상이나 행상 같은 장사꾼들이 직접 고을민들을 만나 물건을 사고 팔거나 물물교환을 했다. 그러나 타지에서 오는 장사꾼들은 사정이 달랐다. 특히 한양에서 물길을 타고 올라오는 경상들은 그들의 물건을 직접 산매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왜 그런가하면 우선 가장 큰 문제는 타지의 상인들은 그 지역 토박이 장사꾼들에 비해 고을 사정이나 정보에 약했다. 여러 복잡한 사정에 따라 물건 값이 수시로 오르내리는 이런 상황에 어둡다는 것은 장사꾼들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가 경상들은 배를 이용해 막대한 물량을 싣고 올라왔다. 그 많은 물량을 일시에 판매하는 것도 내륙 깊숙한 내륙고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를 물건을 지고이고 산골마을마다 일일이 지고 다니며 판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한양에서 올라오는 경강상인들은 그 지역의 객주들에게 물건을 넘기고 위탁판매를 했다. 그것이 상거래의 기본이었다. 그런데 봉화수는 청풍도가로 물건이 넘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만으로 급한 마음에 넘겨 집고 평시 이루어지고 있는 상거래의 기본을 잠시 잊어버린 것이었다. 배영학 역시 생각지도 않은 제안에 당황을 했음이 분명했다. 장사를 하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재미를 볼 때도 있었다. 또 그보다 더한 횡재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냥 아무런 연유도 없이 굴러오는 법은 없었다. 재미를 보거나 횡재를 할 때는 반드시 어떤 요구가 있었다. 오랫동안 장사를 하며 그런 경험을 수없이 겪어왔기에 횡재수가 있어도 덥석 물 수가 없었다. 봉화수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배 선주 물건을 우리가 몽땅 도거리하겠소이다!”

봉화수가 선수를 쳤다.

“정말 우리 물건 값을 곱절로 쳐준다는 거요?”

배영학이가 확인을 하듯 물었다.

“곱절은 그렇고 돈으로 당장 줄 수도 있소!”

“좀 전 얘기는 뭐요?”

“그거야 장사꾼이 흥정을 붙이려고 그러는 것 아니오.”

“아무리 흥정이라 해도 금방 눈앞에서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데 어떻게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소?”

“그건 미안하외다. 그렇지만 배 선주도 생각을 좀 해보시오. 지금 청풍도가에서는 당신 물건을 위탁받아 팔아주겠다는 것인데, 나는 그걸 돈으로 당장 주겠다는 것이오. 그게 얼마나 좋은 조건인지는 배 선주가 더 잘 알고 있을 것 아니오?”

“으흠, 그건 그렇지만…….”

봉화수가 배영학의 심중을 정확하게 찍어내자 그가 말을 얼버무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