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홍 참봉네가 득세를 할 때만 해도 사랑채는 지체가 있는 벼슬아치나 양반들이 머물던 곳이었다. 보잘 것 없는 선비나 허름한 길손은 행랑이 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장사치에게는 행랑조차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홍 참봉네 집안이 몰락하고 주막으로 변하자 천대받던 장사꾼도 이런 사랑채에 머물게 되었다. 하기야 홍 참봉 집이 망해 장사꾼이 이런 집에 머물수 있게 된 것만은 아니었다. 이전에 비하면 세상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변한 정도가 아니라 천지가 개벽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권력과 돈을 모두 양반님네가 쥐고 있던 예전과 달리 이젠 많은 돈이 장사꾼들에게로 넘어가 있었다. 물론 아직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이 권력을 쉽게 넘보지는 못했다. 비록 돈으로 권력을 살 수는 없었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신분상승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장사꾼들을 불상놈 취급하던 과거에 비하면 세태가 엄청나게 달라진 것만은 분명했다.

“북진여각 주인이오?”

봉화수가 사랑채로 들어서 댓돌을 딛기도 전에 마루에 있던 자가 선 채로 물었다.

“아니오. 난 북진여각 공원이오.”

“주인도 아니고 공원이 와 뭔 일을 도모하겠다는 거요?”

“나는 대행수 명을 받고 온 사람이니 내가 하는 말은 우리 대행수 말이나 한가지요.”

“옆에는 누구요?”

“우리 여각의 객주요!”

“이런 촌구석에서 객주는 무슨 놈의 객주! 요샌 개나 소나 다 객주여!”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그자의 표정에서 두 사람을 업신여기고 있음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이 자를 당장에……!”

“이보게.”

불끈하는 봉화수를 황칠규가 눈짓으로 주저앉혔다.

“절루 들어가보시오!”

봉화수의 인상이 구겨지는 것을 본 자가 마루 끝 방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그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배영학이라 하오.”

봉화수와 황칠규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선주인 듯한 자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배에는 어떤 물건들이 실려 있소이까?”

“여기 청풍도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기는 이제 시작한 아장거리는 장사치라 하는데, 그런 장사가 내 물건을 살 수 있겠소?”

봉화수의 물음에는 답도 하지 않고 배영학이 옆에 앉아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그자 역시 마루에 서있던 자처럼 두 사람을 업신여기는 투였다. 또다시 봉화수의 속이 들끓었다. 아무리 근본 없는 장사꾼이라 해도 첫낯부터 경우 없는 짓거리는 받아들이기가 힘겨웠다. 저러니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아도 당연하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나는 대로만 한다면 금덩어리를 거저 쥐어준다 해도 당장 판을 엎어버리고 싶었다. 그때, 언젠가 최풍원 대행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장사는 귀로 송곳이 들어와도 입은 웃어야하는 법이다. 장사꾼이 뭐하는 일이 있느냐. 귀와 입으로 사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어떤 소리라도 달게 듣고 입으로 달게 말해야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법이다!’봉화수가 마음을 가라앉히며 바짝 다가앉았다.

“우리 여각과 한 번 흥정을 해보시지요?”

“말이 여각이고, 장마당이고 상전이지 빛 좋은 개살구랑께. 소문난 잔치에 젓가락 갈 곳 없다고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허깨비랑께. 그렇게 차려놓고 장사꾼들 불러들여 뒤통수친다는 소문이 청풍 바닥에 파다하다오.”

청풍도가 놈이 초장부터 훼방을 놓았다.

“어떤 물건을 가져왔습니까?”

봉화수가 청풍도가 놈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배영학에게 싣고 온 물건의 종류를 물었다.

“어떤 물건이라고 말하면 그쪽 여각에서 살만한 돈은 있소?”

“그건 흥정을 해봐야 할 일이고, 내가 분명 약조를 하리다. 내가 오기 전 청풍도가와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몰라도 이 자가 제시한 조건의 곱절을 쳐주겠소이다. 만약 그 약조를 내가 깬다면 내 혀를 뽑아도 좋소!”

봉화수가 앞에 앉은 청풍도가 놈을 손가락으로 찌를 듯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어떤 흥정을 했는지 알기나 하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알든 모르든 아무런 문제없소. 도가에서 흥정한 것의 무조건 곱접을 주겠다. 만약 이 자리에서 도가가 금을 올린다면 나는 또다시 그 금의 배를 주겠소! 어떻하시겠소?”

봉화수가 청풍도가 놈은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시한 채 배영학을 몰아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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