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내 반드시 네놈 명줄을 내 손으로 끊어 이 원수를 갚을 날이 올게다.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명줄을 움켜잡고 있거라!”

최풍원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렸다.

여적지 단 하루도 좋은 날을 지내보지 못한 여동생이었다. 집안이 몰락한 후 고향에서 쫓겨나 수리골에서 짐승처럼 살면서 늑대 아가리에서도 구해냈던 동생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연풍관아에서 천주교도로 몰려 처형당하고 이 세상에는 오직 두 남매만 남았다. 교도들이 모여 살던 수리골은 불타버리고 어린 두 남매의 힘으로는 도무지 산중생활을 견뎌낼 수 없었다. 그래서 연풍 주막집에서 겨울을 보내고 그래도 타관보다는 살아내기 수월하지 않을까 해서 고향 인근으로 온 것이 청풍에서 부자로 소문난 김 참봉 집이었다. 최풍원은 그곳에서 여동생 보연이와 함께 남 집살이를 시작했다. 최풍원 남매가 김 참봉네 집으로 들어간 것은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 소굴로 들어간 꼴이었다. 그리 될 줄 알았더라면 연풍주막집에 그대로 눌러앉아 있거나 늙은 여우 새끼가 드러운 속내를 내비췄을 때 보연이와 함께 그 집구석을 박차버렸어야 했다. 그것도 못했다면 진즉에 보연이를 김 참봉네 집에서 데리고 나왔어야 했었다. 최풍원은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후회한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보연이가 죽었다는데 뭘 한들 죽은 여동생을 살려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풍원은 반드시 보연이의 죽은 연유를 알아내고 원수를 갚겠고 다짐했다. 강을 건너 북진으로 오며 최풍원은 김 참봉네 집안의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또 갈았다.

“풍원아, 다 지 팔자가 거기까지였다고 생각해. 그래야 너도 보현이도 편해!”

장석이가 북진여각으로 돌아온 최풍원을 감싸주었다.

“장석이 형, 내가 보연이한테 너무한 것 같구먼. 장사해서 돈 벌면 데려오겠다던 말도 핑계고, 지 장사에만 빠져 하나 있는 여동생조차 잃었으니 어쩌면 좋겠수?”

최풍원이 서러움에 복받쳐 푸념을 했다.

“너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잘 알잖냐?”

장석이가 위로를 했다.

“내 욕심 부리다 이 꼴이 된 거여. 첨에 김 참봉 집을 나올 때는 집칸이라도 얻을 형편이 되면 데려오겠다 하고, 그게 해결되니 이번에는 조금만 더 돈을 벌어 번듯한 집을 지으며 하고 했다가, 집이 되니 이번에 돈 좀 더 벌어 부자가 되면 해야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 지경이 되었구먼. 나중에 저 세상에 가서 어머니 얼굴을 어찌 보오.”

최풍원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을 했다.

“대행수 어른, 지금 큰일이 목전에 닿아 있으니 그 일부터 하심이…….”

봉화수가 최풍원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풍원의 얼굴은 무너진 하늘을 온통 혼자만의 힘으로 떠받히고 있는 모습이었다. 봉화수는 최풍원이 심히 걱정되었다. 대행수 자신의 아픈 마음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혈육이라고는 유일했던 여동생을 잃은 그 마음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북진여각은 매우 중요한 때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풍원은 북진여각의 수장이었다.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수장인 대행수가 흔들려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다. 자칫하면 최풍원 대행수의 처신에 따라 북진여각과 도중의 모든 조직이 흔들릴 수 있었다. 봉화수는 그것이 염려되어 한 말이었다.

“화수야, 대행수도 오래 저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보채지 말고 며칠만 기다려보자. 그동안은 자네가 여각 안팎은 물론 도중 객주들까지 잘 단도리했으면 좋겠구나. 대행수 일이 바깥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각별히 단속을 하게나.”

장석이가 봉화수에게 최풍원의 빈자리를 맡겼다.

봉화수는 북진장 상전객주들과 임방 객주들, 보부상과 행상들을 독려하여 청풍읍장과 청풍도가의 숨통을 더욱 옥죄었다. 몇 파수의 장날이 지나갔는데도 장마당에 나오는 물산과 장꾼들이 줄어들자 청풍도가에서도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청풍도가 역시 휘하들을 풀어 암암리에 북진 장마당을 돌며 염탐을 하고 있는 것이 감지되었다. 이들을 잘만 역이용한다면 청풍도가를 쉽게 요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최풍원 대행수가 칩거에 들어있지만 않아도 여러 경로를 이용해 방법을 강구할 수 있었겠지만 봉화수에게 그럴만한 권한이 아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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