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런데 청풍을 드나들던 누군가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장석이가 최풍원에게 보연이를 직접 찾아가보라고 일렀다. 최풍원은 곧바로 강을 건너 청풍 읍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보연이가 살고 있는 김 참봉의 옛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온갖 불길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풍원이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김 참봉이 죽고 나서부터는 김주태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는 집이었다. 김 참봉 집에서는 별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최풍원이 사랑채로 김주태를 찾아갔다. 김주태가 아랫것들의 눈치를 살피며 최풍원을 사랑채 방으로 들라했다.

“무신 일이냐?”

 최풍원이를 보자 김주태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보연이를 만나러 왔소!”

“왜?”

“이젠 내 집으로 데리고 가야겠소!”

최풍원이 단호하게 온 연유를 말했다.

“내 집 사람이니 못 데리고 간다!”

김주태가 잘라 말했다.

“참봉도 갔으니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소이다!”

“출가외인이다!”

“그건 당신이 할 말이 아니오!”

“뭐라 당신? 종놈이 어디서 감히!”

김주태가 도끼눈을 하며 최풍원을 노려보았다. 최풍원도 지지 않고 김주태를 노려보았다.

의지가지없는 어린 남매에게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을 해서 제 늙은 애비의 회춘용으로 어린 보연이 신세를 망친 장본인이 바로 김주태였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자기 집 식구라며 데려갈 수 없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김주태를 씹어 먹고 싶었다. 보연이를 제 애비의 동첩으로 들일 때 약속했던 땅 마지기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머슴들한테 구박을 받아가면서까지 일해 맡겨두었던 세경까지 몽땅 먹어치운 장본인이었다. 이미 김 참봉도 죽었고, 최풍원도 이 집에 빚진 것이 없으니 보연이만 좋다면 데려가도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최풍원은 보연이가 싫다고 해도 이번에는 반드시 데려갈 참이었다. 그런데 김주태가 출가외인을 운운하며 방파매기를 했다.

“뭐요? 종놈이면 내가 당신네 집 종놈이오?”

최풍원도 물러서지 않은 채 당차게 대거리를 했다.

“…….”

김주태가 최풍원의 당찬 대거리에 놀랐는지 말문을 열지 못했다.

“보따리도 필요 없소! 난 보연이만 데려가면 그뿐이오! 어서 내놓으시오!”

“으-흠.”

김주태가 말은 하지 않고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지금 당장 데려갈 것이니 어서 나오라 하시오!”

최풍원이 김주태를 몰아세우며 다그쳤다.      

“죽었다.”

김주태가 남의 다리 긁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라고요!”

최풍원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보연이가 죽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지난 번 보연이의 태도가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버릴 정도로 심각하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최풍원은 김주태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그저 날짜를 묻듯 물었다.

“언제?”

“열흘 전에 그랬다.”

“그런데 어째서 나한테는 안 알렸슈?”

“집안에 흉사를 뭐 좋은 일이라고 동네방네…….”

김주태의 말투에서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느껴졌다.

“분명 뭔가 있소! 솔직히 말해 보시우!”

“…….”

김주태는 말없이 딴전만 피웠다.

“관아에 고변을 해 자초지종을 파헤치고 말겠소이다!”

최풍원이 보연이의 사인을 알아야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제 년 스스로 죽은 걸 뭔 고변한단 말이냐?”

“뫼는 어디에 썼소?”

“흉하게 죽은 년을 뭔 뫼고? 태워서 강에 뿌렸다.”

“이런 개만도 못한 인간!”

최풍원의 눈에서 불똥이 철철 떨어졌다. 최풍원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김주태의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아니, 이놈이 어디서 행패를 부리는고!”

김주태가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 소리를 듣고 머슴들이 달려왔다. 최풍원이 머슴들에 의해 사랑채 마당으로 끌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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