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어물전은 어떻소이까?”

“삼개에서 올라오는 경상들 물건은 읍나루로 가기 전에 우리 북진나루에 물건을 풀어놓도록 했소이다. 청풍도가보다 금을 배로 쳐주니 다른 경상들까지 우리 북진으로 뱃머리를 돌리고 있소이다.”

어물전 김길성 객주가 최풍원의 물음에 답했다.

“박 객주도 경상들 곡물이 청풍읍나루로 올라가지 못하게 특별히 단속을 해주시오!”

“여부가 있소이까?”

최풍원의 당부에 박한달 싸전 객주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산들만 잘 틀어막으면 되겠는데…….”

“대행수 그것도 염려 마오. 어제 매포에서 온 장꾼 얘기를 들으니 단양은 물론 상진, 하진, 장외 언저리 모든 물산들을 우리 도중 객주들이 싹 거둬들이고 있고 값을 후하게 쳐주니 고을민들이 집에 꽁꽁 쟁여놓은 것조차 들고 임방으로 오고 있다는구만.”

피륙전 김상만이었다.

최풍원이 충주 윤왕구 객주로부터 거금을 빌려와 북진여각 상전객주들과 청풍도가를 둘러싸고 있는 청풍 관내 북진도중의 임방객주, 그리고 강 상·하류의 임방 객주들, 장마당을 돌아다니는 보부상들과 행상들에게 풀어주고 물산들을 도거리하자 그 결과는 그 다음 파수 청풍읍장에 그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날이 되자 평소와 달리 사람들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고 장에 나오던 물산들도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두 파수가 지나고 세 파수가 되자 한낮에도 폐장처럼 썰렁해졌다. 최풍원은 각 지역의 객주들을 더욱 독려하며 산지에서 청풍도가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고 일제히 매입에 들어갔다. 그리고 매입된 물산들은 속속 북진여각으로 옮겨졌다. 북진여각에서는 물산을 분류하고 묶어내느라 매일같이 밤샘 작업이 이어졌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작업이 계속되던 어느 날, 장석이가 침통한 표정으로 풍원이를 불렀다.

“형, 왜 그러시우?”

“지금 보연이한테 좀 가 보그라.”

“왜?”

“…….”

무슨 일인가를 아는 듯 했지만 최풍원의 물음에 장석이가 대답을 피했다.

최풍원이는 바쁜 장삿일 중에서도 보연이 소식은 수시로 듣고 있었다. 그렇게 여탐을 하던 김 참봉은 벌써 삼년 전에 죽었다. 최풍원은 그때 보연이를 북진으로 데려오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보연이는 오라버니가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짐이 되기 싫다며 따라나서기를 거부했다. 어지간하면 최풍원도 늑대소굴 같은 김 참봉 집에서 끌고서라도 데려오려고 했지만 보연이가 워낙 완강하게 뿌리치는지라 하는 수 없이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럭저럭 세월은 또 그렇게 무심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보연이 얼굴을 본 것은 얼마 전이었다.

읍내 청풍장에 갔던 옥매가 보연이 소식을 물고 왔다. 옥매는 북진여각에서 잡화를 떼어다 파는 방물장수였다. 집안의 안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방물장수는 양반집 아낙들과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소통 구실을 했다. 옥매가 가지고 온 소식에 의하면 보연이가 실성해서 정신이 들락날락한다는 것이었다. 최풍원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북진나루를 건너 김주태 집으로 찾아갔다.

“오라버니, 이리 살면 뭐하우?”

보연이는 최풍원을 보자마자 낙담에 빠졌다.

“무슨 일이냐?”

“혀라도 깨물고 콱 죽어야하는데…….”

최풍원의 물음에는 답도 하지 않은 채 보연이는 죽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행동이었다. 늙은 김 참봉의 회춘용 노리개로 들어가면서도, 또 문턱만 넘으면 저승길인 늙은이와 살을 부비고 살면서도 오라버니에게 죽고 싶다는 소리 한 번 하지 않던 보연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느냐?”

“오라버니, 이렇게는 도무지 살 수가 없어요!”

보연이가 몸부림을 쳤다.

“그럼 나하고 같이 가자구나!”

“오라버니 죄송해요. 이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몸이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냐?”

“…….”

보연이는 오라비 최풍원의 물음에 끝내 무엇이 그리도 힘겨운 지 대답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보연이는 최풍원이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최풍원은 그렇게 보연이 얼굴만 보고 그날도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불과 달포 전 일이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