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거울: 거울을 바라보는 여성들
(4) 거울-여성-허영의 의미를 해체하다
캐리 메이 윔스 作 ‘거울아 거울아’ 백설공주 명장면 패러디
동화속 갈등구조, 흑인 여성의 삶 반영한 흑백 갈등으로 바꿔
직설적이고 강한 메시지 눈길…여성에 대한 편견 뒤집은 작업
낸 골딘 作 ‘메이크업을 하는 케니’ 성소수자 편견없이 담아
여성 미술가들, 거울이라는 소재 도구 삼아 기존 인식 깨뜨려

캐리 메이 윔스 ‘거울아 거울아’ 1987(왼쪽). 낸 골딘 ‘메이크업을 하는 케니’ 1973.
캐리 메이 윔스 ‘거울아 거울아’ 1987(왼쪽). 낸 골딘 ‘메이크업을 하는 케니’ 1973.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거울을 든 여성이 허영의 상징물이 되었던 수백 년의 관행은 1970년대 여성주의 미술이 대두되면서 의심되기 시작했다. 이후 많은 여성 미술가들과 미술이론가들은 과거 미술사를 되돌아보고 여성과 관련된 기존의 상징을 해체하는 작업을 했다. 거울을 든 여성은 그들의 해체 작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도상 가운데 하나였다. 거울 앞에 선 남성 화가의 자화상이 자아성찰의 의미를 가지고 자신의 화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에 비하면, 거울을 바라보는 여성에 왜 부정적인 가치가 입혀지는지에 대해 여성작가들이 질문을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캐리 메이 윔스(Carrie Mae Weems)의 1987년작 ‘거울아 거울아’는 저 유명한 ‘백설공주’의 가장 대표적이고 잊을 수 없는 장면을 패러디하는 작품이다.

원래의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계모는 마법 거울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지?”하고 말이다. 독일의 언어학자였던 그림 형제가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모은 ‘그림동화’에는 이 구절이 “Spiegel Spiegel an der Wand, Wer ist die schonste im ganzen Land?”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이 문장을 굳이 독일어 원문으로 되새겨보는 이유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die schonste)’라는 표현이 영문판으로 번역되었을 때 beautiful이라는 일반적인 형용사를 쓰지 않고 fair라는 단어를 채용했기 때문이다. 영문으로 번역된 이 문장은 “Mirror Mirror on the wall, who's the fairest of them all?”이었다.

화장품의 색조를 고르는 오늘날의 여성들은 ‘페어(fair)’가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챌 것이다. 페어(fair)는 공정하다는 뜻 이외에, 영어 고어(古語)로는 예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새하얀 금발의 미녀를 수식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장품의 ‘페어’색은 가장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선택지인 것이다. 백설공주는 ‘Snow white’, 즉 눈처럼 하얀 피부 빛을 가진 공주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페어’가 적절한 해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에서도 늘 거울만 쳐다보는 왕비는, 미모의 비교우위를 위해서라면 인정사정 없이 행동하는 혐오스러운 여자이다.

그런데 캐리 메이 윔스의 작품을 보면 거울을 앞에 서서 질문을 던지는 여성은 왕비가 아니라 젊은 흑인 여성이고, 거울 속의 요정은 어쩐지 좀 심술궂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 윔스는 친절하게도 이들의 대화를 작품의 아래에 텍스트로 함께 구성하고 있다.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흑인 여성이 질문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훌륭하죠?”거울이 답한다. “백설공주지, 너 흑인년아, 그걸 잊지 마!!!”(LOOKING INTO THE MIRROR, THE BLACK WOMAN ASKED, “MIRROR, MIRROR ON THE WALL, WHO'S THE FINEST OF THEM ALL?" THE MIRROR SAYS “SNOW WHITE, YOU BLACK BITCH, AND DON'T YOU FORGET IT!!!"

아, 우리는 이 작품을 보며 깨닫는다. 우리가 이 동화에서 놓친 것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백설공주 이야기 속 거울은 가장 희고 아름다운 여성(the fairest)이 누구인지에 대해 대답해주는 것이었다. 흑인 여성 작가인, 게다가 열여섯에 아기를 낳고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꾸려가며 도전적인 작품을 선보여왔던 캐리 매이 윔스가 이 동화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각에 대해서 우리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캐리 메이 윔스는 자신의 딸에게 그림 동화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림 동화는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흰 여성이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동화 속 뉘앙스는 흑인 여성 작가로서, 그리고 흑인 여성으로 성장할 어린 딸에게 매우 거슬리는 대목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캐리 매이 윔스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가장 희고 아름다운 사람(the fairest)’의 자리에 ‘가장 훌륭한 사람(the finest)’이라는 표현을 대신 써 넣었다.

그 조상을 따라가 보면 노예로 잡혀와 천민 취급을 받았던 흑인이었을 것이 분명한 케리 메이 윔스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동화의 갈등구조를 왕비와 공주간의 악과 선, 추와 미의 대결이 아니라,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반영하여 흑과 백의 갈등으로 바꾸었다. 거울 속의 요정은 “가장 훌륭한 사람이 누구냐”는 젊은 흑인 여성의 질문에 대해, 감히 어디다 대고 질문을 하냐는 식으로 “흑인년(black bitch)”이라는 욕설을 내뱉는다. 네가 흑인년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거울 요정의 불친절한 대답은 마무리된다. 이 대목에서 캐리 매이 윔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이면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조건이다.

윔스 이외에도 많은 여성 미술가들은 여성으로서 극복해야 할 차별 이외에도 세계에 혼재하는 여러 불평등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거론한다. 각종 불평등, 이를테면 만연한 인종차별주의와 자본유무에 의한 교육적 불평등의 문제,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적 계급의 문제, 그리고 성적 소수자의 문제들에 여성주의자들은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연대한다. 페미니즘(femism)이라는 것이 우리말로 여성주의라고 번역될 수밖에 없겠으나, 제대로 용어정리를 하자면 성평등주의라고 일컬어야 할 이 흐름에는 사회에서 관행으로 취급되어 문제시되지 않는 온갖 차별의 문제가 함께 거론되는 것이다.

여성과 거울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낸 골딘(Nan Goldin)의 1973년 작품 ‘메이크업을 하는 케니’에는 거울을 바라보며 거울을 들고 화장을 하는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낸 골딘이의 피사체가 된 이 여성의 타고난 성별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낸 골딘은 아무런 편견 없이 성소수자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일상을 함께 하면서 스스럼없이 그들의 모습을 찍어 작품으로 발표했다.

흔히 말하는 드래그 퀸(drag queen), 타고난 성별과 다른 내면을 표현하는 이들의 실제 살아가는 모습, 커피를 마시거나 화장을 하거나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거나 결별에 아파하거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성애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사진 작품으로 내보였던 것이다. 물론 낸 골딘이 이들의 일상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편견 없이 친구로 받아들여 카메라가 다가갈 때 거리낌 없이 곁을 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여자가 거울을 들고 화장을 하네, 여자들이란 저렇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게 마련이지, 하고 이 작품을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여성처럼 보이는 이 인물이 실제로는 남성이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여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 사람과 거울의 관계는 과연 방식으로 가치를 판단해야 할 것인가.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해지지 않았는가?

거울을 바라보는 여성이라는 도상은 이제 간단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자신의 얼굴을 반영하는 거울을 누구나 매일 보지만 유독 여성에게 씌워졌던 허영이라는 가치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은 여성 미술가들의 작업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여성 미술가들은 거울이라는 소재를 도구로 삼아 오히려 기존의 인식을 깨뜨리는데 사용하고 있다. 성차별적 해석의 문제와 함께 인종문제와 성소수자들의 문제 등과 함께 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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