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계절의 순환 뒤에 오는 기쁨 중 으뜸은 아마도 새하얀 눈 속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과의 만남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노래했지만 여전히 영향력 있는 봄의 책을 한 권 펼쳐보자.

겨울을 보내기가 못내 아쉬운 숲속에 소복소복 흰 눈이 내린다. 땅속 굴에선 곰과 생쥐들이새근새근 자고 있고, 둥근 껍질 속에선 작은 달팽이들이, 나무구멍 속에선 다람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자고, 움푹한 땅속에선 마르모트들이 곤히 잠을 자고 있다. 그 위로 하얀 눈이 소록소록 내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갑자기 모두들 눈을 번쩍 뜨고 코를 킁킁거린다. 그러더니 갑자기 하얀 눈 위를 달린다. 땅속에서도 나무구멍에서도 움푹한 땅속에서도 뛰쳐나와 모두가 코를 킁킁거리며 같은 곳을 향해 달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잠시 후 모두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와!” 하고 소리를 지른다. 숲속 친구들이 그토록 탄복하며 둘러싸여 보고 있는 것은 하얀 눈 속을 헤집고 올라온 노오란 꽃 한 송이였다.

앞 표지에 기분 좋게 밝은 노란색과 그 속에서 신나게 어울려 춤추는 동물들이 나온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신이 났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다음 장을 넘기면 흑백이다. 넘겨도 넘겨도 하얀색과 검은색의 단순한 구성이다. 그러나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작가 특유의 부드러운 흑백그림과 절제와 세련된 반복이 운율감과 속도감마져 느끼게 한다.

하얀 눈이 내리는 조용한 숲속에 자고, 깨고, 냄새 맡고, 한 곳을 향해 달려가는 동물들의 모습은 마치 잘 짜여진 교향곡을 듣는 듯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그림과 음악을 같이 공부한 작가의 훌륭한 감각이 녹아있는 것이다. 소복이 내리는 하얀 눈을 이불 삼아 자고있는 장면은 플롯의 조용한 선율이다.

코를 킁킁거리며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바이올린 음률, 모두가 깨어나 하얀 눈 위를 달리는 장면은 콘체르토, 모두가 놀라 감탄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모든 악기가 동원된 교향악의 클라이막스 같다.

겨울잠이라는 힘겨웠을 인내 뒤에 오는 기쁨은 크든 작든 힘의 유무에 상관없이 공평하다. 모두가 망설임 없이 달려가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맞이한다.

밝고 경쾌한 시적 언어의 글과 그림과 음악까지 공부한 작가의 능력이 고스란히 책 속에 들어있다. 단순하고 절제된 글에 한 차원 높은 그림으로 형상화 했다.

어찌보면 한없이 단순하고 지루할 수 있는 흰색과 검정색으로 깨끗하고 고요한 눈덮인 숲속을 잘 표현했고 목탄의 부드러움으로 을씨년스러운 겨울을 덮었다. 그림 작가의 관찰력은 동물들의 형태와 표정 털의 촉감마져 생생히 느껴지게 한다.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을 달리게 만든 노란 꽃은 머잖아 뒤따라 올라오게 될 푸른 숲의 전령사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 죽을 만큼 힘들었을 겨울이 곧 끝날 것이니 절로 춤이 추어질 것이리라.

동물들의 세계든 인간들의 세상이든 자연의 섭리는 공평하고 정직하다. 그런 자연의 향연을 우리들은 너무도 당연히, 무감각하게 맞이하지는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유난히 심난했던 겨울을 보내며 노오란 꽃이 아니어도 언 땅을 꽂꽂하게 헤치고 올라오는 새 생명을 보며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져보면 참 좋을 듯 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