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오늘부터 자네들은 청풍으로 들어가는 근거리 물산들을 막는 것은 물론 원거리까지 순력을 해서라도 청풍도가에서 공납하려는 물산들을 모조리 사들이게! 보리·밀·콩·팥·봉밀·깨·고추·마늘·무명·삼베는 무조건 선매를 하게. 또 자신이 순력하는 지역에서 나는 특산품은 선금을 주더라도 선점을 하게!”

최풍원은 북진도중 소속의 임방객주들과 행상을 하는 보부상들에게 장마당에서 유통되는 모든 물산을 사들이도록 명했다. 특히 청풍도가에서 공납할 물목이 눈에 뜨이면 어떤 값을 치루더라도 좁쌀만큼의 물산도 청풍장이나 도가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게 매입할 것을 엄명했다.

“특히 수산장, 덕산장, 한수장, 양평장, 금성장을 보는 보부상들은 청풍도가와 거래하는 장돌뱅이들이 물산을 매입하지 못하게 단속을 하게! 그리고 매입한 물산들이 수집되면 한시도 늦추지 말고 동몽회원들을 통해 북진임방으로 운반시키게!”

최풍원은 보부상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그리고 떼를 지어 이장저장을 순력하는 보부상들에게는 두세 명씩의 동몽회원들을 붙였다. 혹시 생겨날지도 모를 불상사도 방지하고 빠른 시간 안에 북진여각으로 물산들을 옮기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청풍관아의 관할이 아닌 원거리 나루터의 객주들과 보부상들에게도 청풍도가에서 매입할 물산들을 미리 선점해 도거리 할 것을 전했다. 이제 청풍도가로 들어가던 물산들 길목은 북진임방에 의해 이중삼중으로 둘러싸여 막히게 될 터였다. 

“어르신 그렇게 하려면 큰돈이 필요합니다. 지금 북진여각 여력으로 그걸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봉화수가 최풍원에게 물었다.

“이번 기회에 두 마리 늑대를 한꺼번에 잡는 것이 어떠하시겠어요? 그러려면 정말 큰돈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미향이도 봉화수와 같은 의견을 냈다.

“나도 이번 일에 막대한 돈이 필요할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한 마리 늑대는 또 누구냐?”

최풍원이 미향에게 물었다.

“청풍부사 이현로를 말씀드리는 거여요.”

“이현로까지?”

미향의 말처럼 청풍도가의 목줄을 죄려면 청풍부사 이현로와 청풍도가 김주태의 관계를 끊어내야만 완벽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청풍도가가 청풍관내에서 생산되는 물산들과 뱃길을 통해 들어오는 물건들을 사고 팔며 그것으로 기반을 이뤄 큰 부를 이룬 것은 맞지만, 그것을 지탱하고 행세하는 것은 청풍관아의 뒷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둘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뿌리 깊은 유착관계였다.

“청풍부사가 실권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관내 최고 어른이니 일단 결정권은 그에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현로가 청풍부사로서 이 지역 최고의 권력자임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부사는 일 년의 임기만 채우면 곧바로 다른 임지로 떠나는 뜨내기 권력자였다. 그 이야기는 부사가 최고 어른임은 맞지만 실제로 이 지역에 남아 자자손손 권력을 행사하는 토착세력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청풍부사처럼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뒷전에 앉아 은밀하게 청풍관내 일들을 조종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부사처럼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은 없었다. 일단은 청풍관아로부터 부여받은 청풍도가의 특혜를 무산시키려면 이현로 부사와 김주태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급선무였다. 봉화수는 그 점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들어 왔을 때의 노를 저어야지요!”

미향이는 청풍도가와의 싸움을 시작하며 이현로에게도 약채를 쓰자는 말이었다. 지금 청풍도가 김주태나 이현로 부사나 다급한 상황에 빠져있는 것이 분명했다. 김주태는 이현로 부사로부터 조림을 당하고 있었고, 이현로는 대궐의 탄호 대감으로부터 심한 독촉을 받고 있었다. 세상 모든 관계가 그러했다. 일이 잘 될 때는 찰떡같이 붙었다가도 일이 어려운 지경에 빠지면 저만 살기위해 등을 돌리기 마련이었다. 그것이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거래 관계면 더욱 그러했다. 청풍도가와 청풍관아의 관계가 그러했다. 그런 이해관계가 깨지면 둘 사이는 얼음 갈라지듯 언제든 벌어질 것이었다. 서로가, 특히 김주태가 급한 지경에 처했는데 이현로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해 자꾸 조이다보면 은연 중 금이 가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이 그럴 때라고 미향은 생각했다.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면 서로에게 반목이 생기고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부사도 탄호 대감으로부터 돈을 바치라는 독촉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럴 때 우리 북진여각에서 약을 쓰면 이중삼중으로 효과를 볼 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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