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책상용 작은 달력이 ‘휴가중‘으로 넘어가 있다. 한해를 다 넘기고 맡은바 소임을 마친 후 휴가를 즐기고 있나보다.

지쳤다. 쉬고 싶다. 하지만 아침이면 출근해야 한다. 피로에 찌든 몸, 휴식이 필요하지만 쉴 수가 없다. 비 내리는 날에도 눈 내리는 날도 어김없이 출근한다. 직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가족을 위해서다.

누구나처럼 내 집을 갖고 아내와 아이들과 잘 먹고 행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다. 남들이 쉴 때 같이 쉬면 피로도 풀고 좋겠지만, 그러다 보면 뒤쳐져 인생 낙오자가 되기 쉽다.

놀 것 다 놀고 언제 집 장만하고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겠는가. 옆을 쳐다 볼 시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힘들고 지쳤을 땐 한잔 술로 부르튼 입술을 달래며 살아왔다.

아끼고 절약하며 노력한 끝에 드디어 내 집을 마련했다. 작지만 우리 가족에겐 큰 집이다. 셋방살이에 비교가 되겠는가. 이사를 마치고 들뜬 기분이 안개 걷히듯 사라질 무렵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세상이 눈에 비춰졌다. 창을 통해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세상을 보고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나를 찾게 되었다.

이때 나이가 이미 사십대에 달해 있었다. 힘겹게 달리다보니 세월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젠 약간 숨을 돌리며 휴식과 일을 적당히 섞으며 살기 시작했다. 생활의 여유를 갖고 쉬는 날에는 산과 들도 찾아다녔다. 왜 진즉 이런 생활을 즐기지 못했나를 후회도 해보았다. 지난날의 고통을 참고 살아왔기 때문에 오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고진감래라 했는가.

이제 나는 휴가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방식대로 휴가를 즐기고 있다. 자연을 즐기고, 사람을 즐긴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마음껏 즐기며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세상이 다가온다. 세계가 다가온다. 두발 네 바퀴로 가보지 못하는 곳이 없다. 하고 싶었던 것들, 가보고 싶었던 곳들, 먹고 싶었던 것들, 갖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누리며 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지난 세월은 온통 고통으로 낙인 되어 돌아온다. 좋은 날도 있었겠지만 쉽게 떠오르는 건 고달팠던 나날들이다. 그 시절 잘 참고 견뎌준 가족이 고맙다. 그 때를 생각하며 틈나는 대로 함께 여행을 다니며 지난 시간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런 우리를 세월이 샘을 내고 있지만 아직 내 나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간 살아온 인생에서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 이제라도 가족과 나를 위한 제대로 된 완성작을 한 점 만들어 보려고 한다.

‘휴가중’ 내가 지금 즐기고 있는 휴가 기간을 통해 가장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 작품을 만들어볼 계획이다. 미완의 작품이 아닌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지금 휴가중이다. 이 느낌이 깨지지 않게 늘 조심하며, 내 주변을 맴돌던 바람 따라 떠나갈 순간까지 휴가를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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