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미향이도 탄호대감을 모를 리 없었다. 지금 조선에 살며 탄호대감을 모른다하면 조선 사람이 아니었다. 탄호대감은 이 나라에서 임금 버금 갈 정도로 그 권세가 무지막지했다. 탄호대감의 뒷배에는 조 대비가 있었다. 조 대비는 지금의 임금을 옥좌에 앉힌 대궐의 큰 어른이자 명목상 실권자였다. 어쨌든 임금을 만든 대비를 뒷배로 삼고 있었으니 탄호대감의 권세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물을 필요도 없었다. 탄호대감의 줄만 잡으면 조선에서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이번에 대궐에서 대공사가 벌어진단다. 아마도 그걸 완공하려면 수년은 족히 걸릴 큰 공사인데 그만큼 막대한 돈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그것하고 영감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어요?”

미향이가 부러 무지랭이 같은 소리를 했다.

“허허, 답답한지고! 아무리 아녀자라지만 어찌 그리 속 터지는 소리를 하느냐?”

이현로가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미향이를 밀치며 자세를 바로 세웠다.

“대궐일 하는데 왜 영감이 골치를 썩이는가 해서 드리는 말씀 아니어요?”

미향이가 더욱 바보짓을 하며 이현로를 속 터지게 만들었다. 화를 돋궈 지금 청풍관아와 청풍도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캐내기 위해서였다.

“대궐일이 나랏일 아닌가? 아무리 나랏일에 관심이 없는 백성이라 해도 생각이란 걸 좀 해보거라!”

“영감 같은 분이 이렇게 골머리를 썩혀가며 나랏일을 걱정해서 우리 무지랭이들이 편하게 살고 있는데 우리가 뭣하려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한데요? 그저 우리 청풍 고을민들은 영감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거 아니어요?”

“흐이그, 저러니! 대궐에서 일을 벌이면 임금 돈으로 하느냐. 임금이 무슨 돈이 있느냐? 임금이 일하는 거 봤느냐? 임금이 일도 하지 않는데 그런 큰일을 벌이려면 돈이 어디서 나오겠느냐. 막대한 돈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겄느냐? 부자들 돈자루를 털어내야 하지 않겠느냐?”

“부자들이 돈을 순순히 내놓으려 하겠어요?”

“그러니 하는 말이다. 부자들 돈을 빼내려면 그만큼 뭐를 줘야 불만이 없지 않은 것은 정한 이치 아니겠느냐? 그걸 임금 대신 맡은 사람이 탄호대감이니라! 탄호대감은 임금의 명을 받아 이번에 대궐의 큰일을 마무리할 사람이다.”

이현로가 대답을 하고도 미향이의 답답함을 말끔하게 해결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설명을 해나갔다.

결국 모든 것은 돈이었다. 임금이나 뭇 백성이나 돈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돈이 있어야 무슨 일이고 벌일 수 있었다. 그래서 임금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측근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아 자신의 뜻을 전하고 대신 어떤 이권을 주고, 측근은 임금의 뜻을 빙자해 또다시 아랫사람들에게 권한을 행사하는 먹이사슬 같은 것이었다. 그 먹이사슬이 끊어지지 않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결국 돈이었다.

“종당에는 대궐 일을 하려고 돈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말씀 아니어요?”

“결국은 그런 것이지.”

“그런데 관아와 도가에서는 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여요?”

“청풍관아에도 탄호대감으로부터 전갈이 왔단다.”

“무슨 전갈이겠느냐? 돈을 올려보내라는 것이지.”

“올려 보내면 되지요.”

미향이가 남의 다리 긁듯 말했다.

“그게 어디 한 두 푼이더냐? 자그마치 오천 냥이다!”

“오천 냥이요!”

미향이도 이현로의 말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청풍이 도호부사가 있는 위세 당당한 고을이라 해도 그것이 재물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두 왕비가 난 곳이라 위상을 높이기 위해 격을 올린 것일 뿐 예나 지금이나 남한강 상류 내륙의 깊은 곳일 뿐이었다. 그런 고을에서 오천 냥이라는 돈이 할당됐다니 청풍 부사인 이현로도 갑갑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나도 그렇고, 청풍도가도 큰 치도곤을 당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현로가 한숨을 쉬었다.

“돈이 없어 내지 못하는 것을 어찌 벌을 준답디까?”

“나라에서 일을 한다고 돈을 내라 하는데, 돈이 없다고 못 낸다 하면 그들이 그럼 그래라 하겠느냐? 어떻게든 받아내려 하겠지.”

“관아에서 고을민들에게 세금 거두는 것이나 똑같군요. 영감도 대궐에 세금을 바쳐야 하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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