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충청매일] 기해년(己亥年)이 막을 내리는 섣달이 저물어간다. 지난 한 해를 건강하게 탈 없이 살아온 은혜로움에 감사하고, 안개처럼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새해 경자년(庚子年)에도 새로운 삶 의 설계를 하며 행운의 꿈을 꾸어보리라,

이번 주말로 다가온 한국의 설날의 유래와 전해오는 뿌리 깊은 풍속은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 설은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 21대 비처왕 시절(서기 488년)부터 설을 쇠기 시작한 유서 깊은 명절이다. 조선시대 말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1896년부터 공식적인 설을 양력 1월 1일로 했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조선 문화 말살 정책을 편 일제(日帝)는 조선 음력 설을 없애려 세배(歲拜)도 다니지 못하게 하고, 설빔을 차려입으면 먹물을 뿌리고 떡방아간도 돌리지 못하게 감시했다. 그래도 우리민족의 설 풍속은 없애지 못했다.

철없는 유년시절에 ‘설’을 지낸 일들이 떠오른다. 설빔(歲粧)으로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때때옷을 입고 나풀나풀 재롱을 떨며 아동문학가 윤극영(1924) 작사·작곡한 동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인이면 누구나 흥얼거리는 동요를 부르며 뛰놀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떠도는 구름처럼 멀리멀리 사라져간 아득한 옛 이야기지만 흘러간 세월의 무게에 또 하나를 더하니 황혼길이 서러워 ‘설’ 이라고 했던가

설날 아침에는 일찍이 세찬(歲饌)과 세주(歲酒),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진설(陳設)하고 차례(茶禮)를 지낸다. 설, 추석에 지내는 차례는 무축단잔(巫祝單盞)이라는 점이 기제사(忌祭祀)와 다른 점이다. 차례가 끝나고 나면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조상의 묘소를 찾아가 성묘(省墓)를 하게 되는데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인사를 조상의 묘에 고한다음 무덤과 그 주위를 살핀다. 옛 풍속으로는 섣달 그믐날(음력 12월 30일)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하여 묵 방치기 로 밤을 보낸다. 자정이 지나서 복조리를 사라는 소리가나면 그때 사서 안 방 벽에 높이 달아두면 금년 한 해 동안은 복을 많이 받는다하여 복조리라 했다.

‘설날’ 오후에는 동리 어른들에게 인사드리는 것을 세배(歲拜)라 하며 ‘새해에는 더욱 건강 하십시오’하며 큰 절을 올린다. 여자들은 널뛰기, 화투놀이를 하고, 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윷놀이를 하며 가족이 함께 즐긴다. 남자들은 연을 만들어 하늘높이 띄우며 올 한해의 액운을 날려 보내고 소원성취를 빌었다. 지금은 시끌벅적하던 명절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가족끼리 며칠 쉬거나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이 설 풍속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우리의 전통문화 설 명절을 맞는 세시풍속은 미풍양속이다. 여기에 핵가족 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은 정서 깊은 가족문화가 날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조상을 숭배하는 뿌리 깊은 예(禮)를 잘 지키므로 해서 가정이 화목해지고 사회공동의 질서도 바로 선다고 생각한다. 옛 것을 익혀야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아갈 수 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있기에 우리의 전통문화 ‘설’ 세시풍속(歲時風俗)을 더욱 꽃피워 아름답고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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