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나랏일이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이더냐?”

“다른 사또들은 설렁설렁 세월만 축내며 유랑삼아 있다 올라가던데 영감은 매사 철저한 성품이신지라 우리 청풍 고을민들이야 광영이지만 혹여 몸 축나실까 저어되옵니다.”

“어험! 나랏일을 그리 보면 되겠느냐?”

미향이가 하는 발린 소리인줄도 모르고 이현로가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영감, 오늘은 이만 정사를 놓으시고 저와 더불어 정담이나 나누시지요.”

미향이가 착착 감겨들며 이현로를 유혹했다.

“어허ㅡ 이거 참!”

이현로가 못이기는 척 미향이를 따라 버들가지처럼 흔들렸다.

“그러데 영감, 요즘 관아에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미향이가 자신의 무릎을 베게 삼아 이현로의 탕건 머리를 뉘였다.

“관아에 일이 한 두 가지더냐.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이냐?”

“혹시 근자에 청풍도가와 연관된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미향이가 이현로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은근하게 물었다.

“네가 그런 것은 알아 무엇 하느냐?”

“청풍 장마당에 떠도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도가에서 물건을 쟁여놓고 풀지 않는다고 원성이 자자하다요.”

“원성이 높다니?”

“그렇지 않겠습니까요? 도가에서 물건을 풀지 않으니 당장 필요한 물건도 구할 수 없고, 고을민들은 물건 값을 올리려고 김주태가 하는 짓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걸 영감은 모르고 있단 말이어요?”

“그게 아니다.”

“아니기는요. 벼룩이 간을 내먹지, 없는 사람들 뭘 뜯어 먹을 게 있다고 그리 알뜰이도 해먹는지 도가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여요. 그뿐이 아니여요!”

“그럼 또 뭐가 있다더냐?”

“고을민들이 관아 사또와 도가 김주태가 한 패라며 사또가 뒷배를 봐주지 않으면 한낱 장사꾼인 김주태가 어찌 그리 악행을 저지를 수 있냐며 관아 사또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으니 어저면 좋답니까?”

“으음, 그런 게 아니라는데도…….”

미향이의 말에 이현로 표정이 급작스레 어두워졌다.

“영감 심려 마시어요! 영감에게 불만이 있다하나 관아 사또에게 제 놈들이 뭘 어쩌겠어요?”

“나도 미물 같은 그깟 촌 무지랭이들은 걱정도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다한들 몇 놈만 잡아다 볼기를 치고 치도곤을 놓으면 그런 놈들은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금방 시들어버릴테니…….”

“그런데 뭘 그리 걱정하시어요?”

미향이가 이현로를 무릎에 뉘인 채 한 손으로 아랫도리를 쓸며 은밀하게 말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럼 뭐가 문제여요?”

“한양에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으니 그게 큰 문제 아니겠느냐?”

“그깟 호랭이쯤은 영감 호령 한 마디면 천리만리 줄행랑을 칠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뭘 그리 낙심하십니까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하더니 미향이 네가 그런 짝이로구나. 하기야 네가 이런 촌바닥에서 대호를 본 적이 있기나 하겠느냐. 그러니 날 호랑이로 보는 게지. 한양 대호에 비하면 난 괭이도 안 되느니라.”

이현로가 미향이 손길을 그대로 느끼며 코웃음을 쳤다.

“영감이 괭이도 못 된다면 한양에는 얼마나 큰 범이 산단 말이어요?”

미향이 한양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능청을 떨었다.

“너는 열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짐작도 못할 것이다!”

이현로는 숫제 미향을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촌구석의 아녀자로 취급했다. 하기야 미향의 집안과 과거 전력을 알 리 없는 이현로가 그리하는 것은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이라도 호랑이를 보고 오줌을 지린 경험이 있다면 하룻강아지는 절대로 호랑이에게 대들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현로가 미향이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하룻강아지처럼 미향에게 함부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미향이는 이현로에게 깔봄을 당하면서도 전혀 내색 없이 물었다.

“영감, 한양의 대호는 누구이어요?”

“탄호 대감이라고 하면 네가 알겠느냐?”

“저 같은 촌것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탄호대감이라는 호랭이가 영감을 괴롭힌단 말이어요?”

미양이가 더 적극적으로 아양을 떨며 이유를 캐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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