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내가 너의 거울이 되리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내가 너의 거울이 되리
  • 충청매일
  • 승인 2020.01.1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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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거울: 거울을 바라보는 여성들
(3) 거울 든 여성에 대한 혐오의 문법을 해체하다

게오르게 그로츠, 여성-거울-관음-범행 관계 한 장면에 압축
당시 혐오범죄 ‘여성 살해’를 미술·사회가 바라보던 맥락 폭로
사진작가 낸 골딘, 작품 속에서 거울을 전혀 다른 소품으로 사용
남자친구에게 맞아 멍든 얼굴·고통스러운 기억 가감없이 기록
상처가 아물어가는 만큼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과정 보여줘
거울을 들여다보는 여성 비판하는 남성적 시각 무너뜨린 작업
왼쪽부터 게오르게 그로츠 ‘여성살해자와 피해자로 분한 그로츠와 그의 아내’ 1920. 낸 골딘 ‘거울 앞에 선 낸’ 1984. 낸 골딘 ‘얻어맞은 후 한 달 뒤의 낸’ 1984.
왼쪽부터 게오르게 그로츠 ‘여성살해자와 피해자로 분한 그로츠와 그의 아내’ 1920. 낸 골딘 ‘거울 앞에 선 낸’ 1984. 낸 골딘 ‘얻어맞은 후 한 달 뒤의 낸’ 1984.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먼저 게오르게 그로츠(George Grosz)가 남긴 사진 한 장을 살펴보자. 그로츠는 전쟁 전후 혼란스러운 독일의 상황을 각종 드로잉과 판화와 유화 작품으로 남겼던 화가이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해를 모티프로 한 많은 작품들을 남긴 바 있다. 여성에 대한 성적 살해라는 모티프는 그에게 있어 주된 관심사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로츠 자신과 자신의 아내 에바 페트라가 이 장면을 연기하는 사진을 작품으로 남겼다.

에바 페트라는 속옷을 입고 있는 상태이지만 모자를 쓰고 발목까지 끈으로 동여매는 구두를 신고 있으며, 큰 거울의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며 한 손으로는 손거울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대형거울은 옆모습으로 보이는 에바 페트라의 반대편 옆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속옷을 입은 채로 전신이 노출되어 있는 에바 페트라는 손거울에 담긴 자신의 얼굴에 푹 빠져 앞으로 삐져나온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거울 뒤에 바짝 다가온 위험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저런, 저렇다니까, 거울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허영스러운 망상에 빠져 있으니 여자들이란 좀 더 안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이것이 이 작품의 주제일까?

게오르게 그로츠는 타이까지 맨 신사복을 갖추어 입고 있지만 날카로워 보이는 칼을 들고 에바 페트라를 향해, 이미 거울의 경계를 넘어와서 범행의 직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연출 사진이다. 여성에 대한 처절한 성적 살해를 수차례 그려냈던 그로츠가 자신의 아내에 대한 살의를 느껴 이러한 장면을 연출했던 것일까? 그에 대해 그의 아내 에바 페트라가 동의했던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시작은 일종의 장난기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내에 대한 제안과 동의와 촬영의 시작은 즐거운 작업의 과정이었을 수 있지만, 그로츠의 이 사진이 ‘예기치 않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미술사에 있어서의 거울과 여성의 관계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은 쉽게 범죄의 타깃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성범죄 뿐 아니라 살해의 위협에 늘 노출되어 있는 상태로, 주위를 경계하고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는 충고를 일평생 듣고 또한 스스로의 행동을 검열한다. 과거의 예술작품에서 거울을 든 여성이 허영의 상징이 된다거나, 목욕 중 거울을 바라봄으로써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던 틴토레토의 ‘수잔나와 장로들’ 뿐 아니라 수많은 작품들에서 거울을 바라보는 여성은 그녀를 바라보는 관음적 시선을 쉽게 허락했다. 어리석게도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는 여성들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장면을 자신의 아내와 함께 거울 하나를 경계로 두고 연출하는 이 사진은 여태 아무렇지도 않게 지속되어 오던 여성-거울-관음-범행의 관계를 한 장면에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고, 그것이 화가 자신과 그의 아내가 연기한 연출사진이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을 하고 그 의미에 집중할 수 있다. 그로츠의 이 작품은 당시 연일 신문에 보도되던 일종의 혐오 범죄인 여성 살해를 미술이, 그리고 사회가 바라보던 맥락을 폭로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이 거울을 본다는 것은 정말 그러한 의미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인가? 다가온 위협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여성을 멍청하게 만드는 것이 거울을 보는 행위인가? 동시대의 사진 작가 낸 골딘은 작품 속에 거울을 전혀 다른 소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낸 골딘의 1984년 작품 ‘거울 앞에 선 낸’은 자화상이다. 큰 거울 앞에 서서 가슴께에 카메라를 대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찍은 것이다. 거울 속 낸 골딘의 얼굴은 눈 주변이 멍들어 시커매져 있다. 낸 골딘은 동거하던 남자친구에게 얻어맞은 충격적인 사건을 스스로 기록한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사진으로 남기는 낸 골딘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도대체 이런 자화상을 아무런 은유적 장치 없이 작품으로 남기고 싶은 작가가 또 있을 것인가?

거울 앞에 서서 상처가 나아가는 과정을 찍어가던 낸 골딘은 거울 없이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얻어맞은 후 한 달 뒤의 낸’을 찍었다. 한쪽 눈은 안구에 실핏줄이 터져 가라앉지 않았지만 멍은 어느 정도 치유가 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면으로 응시한 카메라 렌즈는 거울과도 같다. 작가는 입술에 붉게 화장을 하고 치렁치렁한 귀걸이를 하고 목걸이까지 걸쳤다. 상처가 아물어가는 만큼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감도는 푸른빛은 낸 골딘의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런 연출 없는 일상공간이 배경인 것은 여전하다.

이러한 사진을 작품으로 남긴 이유에 대해 낸 골딘은 “지난 기억을 미화(美化)하지 않기 위해서 였다”고 말한다. 그래도 좋았던 남자친구와의 추억 따위로 포장해서 자신의 일생을 포장하지 않기 위해서, 처참한 기억을 쉽게 잊지 않도록, 그리하여 다시는 같은 일이 자신의 일생에 반복되지 않도록 말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거울을 바라보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허영을 비판하는 남성적 시각을 가볍게 무너뜨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맞아서 추해진 얼굴을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고, 인생의 무게를 감당해 나가는 과정의 한 장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남긴다는 이 행위 자체는 기존의 여성-거울의 문법을 혼란시킨다.

낸 골딘은 히피 문화에 심취했던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일종의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좌충우돌하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녀가 안락함을 느꼈던 것은 소수의 친구들과 퀴어(Queer), 즉 성소수자들의 문화 속에서였다.

그녀 스스로 성소수자는 아니었지만 편견을 가지지 않은 낸 골딘을 그들은 친구로 맞아주었고,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낸 골딘은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젠더들이 밤무대에 서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면서 여성의 얼굴처럼 화장하는 모습이나, 같은 성을 가진 이들끼리 끌어안고 키스하는 등의 진한 애정표현을 하는 장면을 사진작품으로 남겼다. 그들과 얼마나 스스럼없고 친밀한 관계인지를 알 수 있는 사진들,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장면들 속에 때로는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유머와 짓궂음을, 그리고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는 그들의 아름다운 한 순간을 친구의 시선으로 담아낸 것이다.

그 작품들은 흔히 볼 수 없는 진기한 장면을 호기심에 차서 남긴 것들이 아니라, 남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일상에 깊이 담겨 살아갔던 자신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미국의 휘트니 미술관에서는 1996년에 낸 골딘의 회고전을 개최하였고, 이 전시는 커다란 호응을 불러 일으키며 독일과 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으로 순회됐다. 이 전시의 제목은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노래 제목인 ‘내가 너의 거울이 되리(I'll be your mirror)’로 지어졌다. 이 노래는 전시장에서 낸 골딘의 필름이 슬라이드 프로젝터로 철컥 철컥 넘겨지는 동안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거울처럼 편안하게 타인의 일상을 반영하는 작업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거울과 카메라에 비추어 보았던 낸 골딘의 자화상 사진들은, 거울을 든 여성에 대한 지난했던 혐오문화를 건너뛰어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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