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씀했다. 누구라도 인생의 풍랑이는 세월을 살아내면 희미하거나 확연한 기억들을 줄 세워 그것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할 시기가 온다. 신체가 낡아가고 정신이 흐미해지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내야 하는 노년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낯설고 두려웁지만 달리 생각하자면 살아낸 세월의 흔적, 조금 덜 열심히 살아도 되는 자연의 권유같은 것일지 모른다.

처음 겪는 일들은 낯설고 어렵다. 나서 엎어지고 앉고 걷는 걸 배우는 데도 수 많은 반복과 넘어짐이 더 나은 발전으로 나아간다면 나이들어가는 일은 그와 반대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더는 자랄 일이 없는 어른, 주름살 가득한 노인은 대신 무엇을 갖게 되었을까를 작고 아름다운 그림책이 기발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노인의 시간대를 회피하지 않고 아름답게 인정하고 기대하도록 하는 그림책을 소개한다.

할머니 생일날, 행복한 순간이다. 생일을 기념하러 멀고 가까이 있던 가족들이 모두 함께 모였다. 기쁜 날인데 어린 여자아이 눈에는 할머니 얼굴이 슬프고 놀란 것 같아 보인다. 아이는 기쁜 날인데 할머니가 왜 행복해 보이지 않는지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아마도 얼굴에 주름살이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대답한다.

아이는, 그럼 주름살이 걱정이냐고 묻는다. 할머니가 전혀 걱정이 안 된다고 주름살에는 모든 기억이 담겨있다고 대답한다. 아이는 할머니 주름살을 하나씩 만지면서 여기에는 어떤 기억이 담겨있느냐고 묻고 할머니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어릴 적 엄마 고양이가 새끼고양이를 낳는 장면을 보고 인생의 수수께기를 풀었던 어느 봄날의 기억이 담겨 있는 주름. 바닷가에서 보낸 최고의 소풍이 담긴 주름. 할아버지와 처음 만났던 밤 놀이기구를 타다가 놀란 일이 담긴 주름. 여동생들의 드레스를 만들어 주던 기억이 담긴 주름. 가까웠던 이웃들과 처음으로 작별인사를 하던 슬픈 기억이 담긴 주름.

아이는 나를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은 어느 주름 속에 있냐고 묻는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입꼬리의 주름 속에 네가 있다고 아이를 꼭 껴안는다. 할머니 주름살꽃이 활짝 피어나는 순간이다.

 이 책은 피하고 싶은 주름살을 의미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주름살이 이야기들의 보물창고, 이야기들의 골짜기가 된다면 많고 깊을수록 좋을 수도 있으리라. 할머니와 아이의 따스한 교감을 통해 기발하게 해석한 할머니 주름이야기는 아름답다. 밝고 따스한 색감과 간결한 글, 문답으로 이뤄지는 경쾌함, 자연스런 그림이 어둠을 밝음으로 승화시킨 듯, 할머니의 행복하고 신기한 기억들의 보관 장소가 되어 있는 주름살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어지는 할머니와 아이의 대화는 할머니의 어느 곳의 주름 속에 간직되어 할머니의 인생을 멋지게 마감해 줄는지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해준다.

아프면 아픈 대로 애증의 기억이, 기쁘면 기쁨의 기억들이 깊게 패인 주름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언젠가 이 앙증맞은 아이를 품에 안고 이젠 삶의 한 부분으로 남겨진 기억들을 간직할 주름살이 하나 더 늘겠지. 갓 찍은 스냅 사진을 보듯 기억들을 재구성해 노년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도록 이끈 그림책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