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여각에서 물산들을 대량으로 풀어놓는다는 소문을 들었다면 분명히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이었다. 상대가 물량을 대량으로 푼다는 이야기는 자신들의 상권을 넘보겠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누가 내 밥그릇을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데 잠자코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청풍도가 김기태는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자신의 재산을 해하려고 달려든다는 데도 죽은 듯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 요상스러웠다.

“혹시 장 객주로부터 무슨 전갈을 받은 것은 아닐까요?”

봉화수가 북진장 잡화전 장순갑 상전객주를 의심했다.

“지난번 상전객주들이 모였을 때 청풍도가와의 싸움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도 그렇고, 나도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팔규가 철저히 동태를 살폈는데 의심 살만한 행동이 없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 참 모를 일일세!”

최풍원도 청풍도가의 무반응에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최풍원은 청풍도가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한 일이었다. 장팔규에게는 청풍장을 돌며 물산을 대량으로 살포할 것이란 소문을 내라하고 상전들 모임에서는 청풍도가와 싸움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려 상반된 풍문이 돌아 청풍도가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장순갑을 겨냥하고 벌인 일이었다.

“강수야, 넌 동몽회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청풍으로 건너가 도가를 염탐하거라.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즉시 내게 알리거라! 팔규도 대방과 손발을 맞춰 장 객주를 철저하게 감시하거라. 그리고 일 일은 절대 비밀에 부쳐야 한다! 어서들 나가 보거라!”

최풍원이 또 입단속을 시켰다.

“화수야, 아무래도 청풍도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아무런 반응이 없을 리 없다! 도식이는 어찌 생각하느냐?”

동몽회원들이 나가자 최풍원이 방안에 남아있던 봉화수와 도식이에게 물었다.

“어르신, 저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틀림없지만 도가에서 일하는 놈도 모르는 일을 우리가 여기서 워찌 알겄슈?”

도식이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장바닥에 북진여각의 물산이 풀릴 것이란 소문이 도는데, 그렇지 않을 것이란 장 객주의 이야기만 믿고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을 김주태가 아니다. 분명 이 일보다 더 급박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르신, 청풍도가를 염탐해서 알아내는 것보다 관아를 통해 알아보심이 어떻겠습니까요?”

봉화수가 조심스럽게 최풍원의 의향을 물었다.

“관아를?”

“청풍부사를…….”

봉화수가 최풍원의 눈치를 살폈다. 봉화수는 미향을 청풍부사 이현로에게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뜻이었다.

“알겠다.”

최풍원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어르신 송구하옵니다.”

봉화수가 머리를 조아렸다.

“…….”

최풍원이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봉화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미향아, 이번에도 네가 수고를 좀 해줘야겠구나. 이번 일은 아주 중한 일이니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다.”

최풍원이 미향을 불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청풍부사 이현로에게로 보낸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정실도 첩도 아닌 여인이지만 그래도 아끼는 정인을 그리 대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 편치 않은 것이 아니라 건천으로 마구 내돌리는 자신의 처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못마땅했다. 그래도 최풍원은 속마음을 애써 감추며 태연한 척 가장했다. 미향 역시 최풍원의 그런 속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명이라면 기꺼이 따랐다.

“영감, 참으로 무심하오이다. 불러주시지도 않고 그동안 어찌 그리 적조하셨사옵니까?”

미향은 청풍부사 이현로를 만나자마자 흉중에도 없는 말을 했다.

“무심이고 적조고 이러다 사람 잡겠구나1”

미향의 아양에도 이현로는 체머리부터 흔들었다.

“청풍 고을에서 영감 잡을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리 엄살을 피우신답니까?”

“관아 일이 청풍 일만 있다느냐?”

“영감께서 나랏일을 너무 열심히 하시니 머리가 아프시지요. 이제 그만 내려놓고 즐기면서 사시어요!”

미향이가 이현로의 도포 자락을 잡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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