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윤이형 작가의 ‘붕대감기’, 김하서 작가의 ‘빛의 마녀’ 등 다양한 주제의식을 가진 소설 4편이 잇따라 출간됐다.

●‘붕대감기’

201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윤이형작가의 소설 ‘붕대 감기’(작가정신, 1만2천원)는 소수자의 감각과 서사에 끈기 있게 천착해온 저자의 자각과 다짐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이다. 우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휘몰아치는 복잡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첨예한 문제의식과 섬세한 문체로 묘파해 저자가 현재 몰두하는 여성 서사라는 화두를 가장 적실하게 그려 보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소설에서는 계층, 학력, 나이, 직업 등이 모두 다른 다양한 여성들의 개별적인 서사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불법촬영 동영상 피해자였던 친구를 보고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미용사 지현, 영화 홍보기획사에 다니는 워킹맘이자 의식불명에 빠진 아들 서균을 둔 은정, 그런 서균과 한반인 딸 율아의 엄마 진경, 진경의 절친한 친구이자 출판기획자인 세연 등 바톤터치를 하듯 연결되는 이들 각자의 사연은 개인의 상처에서 나아가 사각지대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환부에까지 가 닿는다. 인생 속 상처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대하는 과정과 심리가 그려졌다. 우정에 바라는 기대와 실망, 틀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해가려는 마음을 표현했다.

●‘빛의 마녀’

제2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 작가 김하서작가가 장편소설 ‘빛의 마녀’(자음과모음, 1만3천원)를 출간했다.

‘새소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빛의 마녀’는 아이를 잃은 극심한 죄책감과 상실감이라는 공통된 아픔을 가진 두 여성이 공감대를 이뤄가는 이야기다. 특히 타인의 몰이해와 편견, 혐오적 태도에서 주인공 자신이 사람들의 두려움과 경멸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마녀일지 모른다고 확신하는 독특한 설정과 현실과 비현실적인 상황의 연속적 충돌을 통해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의 슬픔을 더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사도의 8일-생각할수록 애련한

조성기 작가가 오랫동안 아버지 영조에게 버림받은 광인으로 기억된 사도세자를 깊이 있는 통찰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더욱 입체적인 인물로 재탄생시킨 작품 ‘사도의 8일-생각할수록 애련한’(한길사, 1만5천원)을 출간했다. 이 책은 비운의 왕세자 사도와 혜경궁 홍씨의 관점으로 돌아본 뒤주 8일간의 기록으로 조성기의 문학적 깊이가 드러나는 수작이다. 역사소설을 넘어서는 인간소설이며 실존소설인 이 작품은 젊은 성군 사도의 역사적 비극을 내면적으로 파고들어간다.

조선 왕실 최대의 비극이며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뒤주 형을 당한 사도. 뒤주라는 절대적인 한계 상황에서 자신이 권력 투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아버지 영조와의 갈등 그리고 혜경궁 홍씨와의 사랑을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조성기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작가만의 날카롭고 섬세한 필체로 그려낸 역사 속의 장면들은 슬프다 못해 애련하다.

●‘천진 시절’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일상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대상을 빼어난 통찰과 흥미로운 서사로 담아내는 금희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천진 시절’(창비, 1만4천원)이 출간 됐다. 최근 창비가 새롭게 선보인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신작이다. 중국 길림성 출신으로 2007년 ‘연변문학’에서 주관하는 윤동주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한 금희 작가는 ‘창작과비평’ 2014년 봄호에 조선족 사회의 탈북 여성 이야기를 다룬 단편 ‘옥화’를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 처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출간한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이 2016년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단숨에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주목받았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서의 근대라는 폭넓은 범주 속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을 형상화’한 작가,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을 포함해 더 잘살기 위해서 여러 나라를 가로지르는 자발적인 이동의 삶’을 포착하는 작가라는 평가(백지연)에 걸맞게 ‘천진 시절’ 역시 생존과 꿈, 그리고 욕망을 주된 주제로 삼아 너른 시공간을 종횡무진하며 활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1990년대 개혁개방시대를 맞은 중국의 생활상과 조선족 청년들의 모습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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