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활터 속담에 “겨울 활 공부에 시수 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겨울철에 활 공부를 착실히 하면 이듬해 봄에 시수가 난다는 뜻입니다. 왜 봄에 시수 나는 일에 집착한 걸까요? 그것은 대회 때문입니다. 겨울이 물러가고 3월 따스한 봄바람이 불면 전국 활쏘기 대회가 시작됩니다. 이른바 ‘궁술대회 시즌’이 오는 거죠. 활쏘기 대회는 전국에 있습니다. 당시 대회에 참가한 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200명 정도의 한량이 모여서 대결을 벌였다고 합니다.

당시는 요즘과 대회 풍경이 많이 다릅니다. 활터에 과녁이 하나뿐이었습니다. 대회는 보통 3순 경기였는데, 하루에 한 순씩만 쏩니다. 결국 한 대회 치르는데 3일이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순(巡)은 화살 5발을 뜻하는 활터 용어입니다. 3순 경기는 5발을 한 단위로 3번 쏜다는 얘기입니다. 15발을 쏴서 가장 많이 맞히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방식이죠.(‘활쏘기의 어제와 오늘’) 

예컨대 충남 금산의 한량이 경주에서 열리는 대회를 참가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당연히 그 전날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야 할 겁니다.

대전으로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대구 거쳐 경주로 갔겠죠. 아침에 나서면 저녁 어두울 무렵에야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면 활터에 가서 연습을 하고 다음날 대회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흘 뒤에 결과를 알게 되고, 만약에 상을 타기라도 하면 축하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밥 한 끼 술 한 잔 하고 헤어집니다. 상을 타면 그날 돌아오기는 어렵죠. 이렇게 되면 수상자는 꼬박 한 지역에서 5일을 머물게 됩니다.

그러면 봄 시즌을 3월, 4월, 5월 석 달로 친다면(6월은 장마 시작으로 대회 어려움) 넉넉  잡아 100일 정도가 됩니다. 한 대회에 5일로 꼬박 일정을 잡아 대회에 참가한다면 몇 차례나 할 수 있을까요? 20여회입니다.

해마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전국에서 활쏘기 대회를 개최하는 곳은 이 정도 되었습니다. 결국 한 번 집을 나선 한량은 전국대회가 끝날 때까지 집에 돌아오기 힘들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다 보니, 활만 쏘며 일생을 보낸 한량들은 평생 가족의 원망을 듣습니다. 제가 1990년대에 만난 이런 한량들은 생활이 몹시 궁핍했습니다. 벌어놓은 돈은 없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으니, 집안으로부터도 대접이 소홀해서 활터에서 겨우 남의 각궁이나 만져주며 소일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한량의 상황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하루 5발 활만을 쏘았을까요? 24시간 동안 화살 5발 쏘는 시간이라야 10여분밖에 안 됩니다. 이 10여분을 빼놓고서 남은 시간을 활터 어딘가에서 지내야 합니다. 어떻게 지낼까요? 상상이 되시나요? 활쏘기 대회가 벌어지는 주변에는 수많은 사행성 놀이가 뒤따르고, 노점들이 들어서며 난장이 서고, 집 밖으로 떠도는 사내들의 수많은 모험담과 풍류 가득한 이야기가 꽃을 피웁니다. 기생과 한량의 마지막 모습이 196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풀어놓을 시간이 허락된다면 좋겠는데,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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