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출신으로 늦깎이 고고역사학 전공 ‘눈길’
강대국에 짓밟힌 역사 속 여성 恨 담은 저서 펴내

조혁연 교수
조혁연 교수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만리장성은 인공 지형물이지만 동북아 민족을 나누는 선이기도 하다. 중원 대륙의 한족은 오랑캐로 불리는 몽골·거란·여진 등의 침입을 대비해 만리장성을 쌓았고, 반대로 북방 민족은 기회만 되면 물산이 풍부한 만리장성 남쪽을 넘봤다. 그 동북아의 틈바구니에 우리 민족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북아는 외교적 역학관계에 따라 이른바 ‘마의 삼각구도’를 만들어 냈다. 이 같은 구도가 형성되면 영토나 인구 면에서 늘 열세에 있던 우리 민족은 피해를 받았고, 공녀는 그 부산물로 생겨났다.

역사의 아픈 손가락인 ‘공녀(貢女)’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인 출신인 조혁연 충북대 초빙교수에 의해 출간됐다. 약소국의 여성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다룬 ‘빼앗긴 봄, 공녀’(세창역사산책/ 8천원·사진)가 그것.

북방 민족인 원나라는 고려에 공녀의 공급을 강제했고 강도는 다소 약했지만, 한족인 명나라도 조선에 공녀를 요구했다. 고려와 조선시대 어린 동녀들은 만주벌판을 지나 중국으로 끌려갔다. 동녀의 극소수는 궁인이 돼 ‘말 위에서 비파를 뜯고 음악으로 옥 술잔 들게 하는’ 사치를 누렸다. 그러나 동녀의 대다수는 인격체가 아닌, 유희물 혹은 공물의 대우를 받았다.

대부분의 동녀들은 물설고 낯선 타국에서 노예 대우를 받다 고향에 대한 한을 품은 채 생을 마감했다. 병자호란 때는 환향녀(화냥년)가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위안부로 끌려갔다. 그들은 모두 약소국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의 젊음을 강대국에 저당 잡혔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동아시아와 조공질서’, 2장은 ‘삼국시대의 공녀’, 3장은 ‘고려시대의 공녀’, 4장은 ‘조선시대의 공녀’, 5장은 ‘국내의 황친과 그 대우’를 다뤘다.

책 전반에서 조 교수는 강대국에 짓밟혀야 했던 우리 역사 속 여성들의 아픔과 한을 함께 나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뒤로 하고 가족과 기약 없는 생이별을 해야 하는 공녀의 애한(哀恨)과 국가 차원에서 공녀를 강제적으로 선발할 수밖에 없었던 약소국가의 숙명을 담아냈다.

조 교수는 2017년 ‘백산학보’ 107집에 실은 ‘조선 전기의 공녀와 그 친족에 대한 시혜-명 경태제 모후 오척의 딸을 중심으로’란 논문에서 충북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궁골’에 주목했다.

궁골과 관련해서는 적어도 3개의 구전이 존재하고 대부분 고려 기황후와 관련한 것이다.

조 교수가 자료를 살펴본 결과, 궁골은 조선 전기 오척(吳倜)의 딸로 명나라 황궁에 진헌된 오공녀의 출생지인 것으로 확인했다. 

조 교수는 “오랫동안 약소국의 설움을 안고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젊은 여인들이 푸른 청춘의 봄 같은 나날들을 강탈당했지만 그 지나간 봄을 돌려받을 수 없는 한이 남아 있다”며 “그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것으로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고자 한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그들과 함께 아프다 보면, 고달팠던 그들의 봄도 우리 곁에 되살아날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타국에 끌려간 이들이 그토록 원했던 것도 고향 산천의 초목이 아니라 고향 사람들의 관심이었을지 모른다. 이제라도 우리가 그들의 한을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충북 충주 출신의 조 교수는 신문기자 생활을 하던 중 어깨너머로 본 인문학의 세계가 흥미를 끌어 뒤늦게 고고학과 역사학을 전공했다. 충북대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과 저널리즘 연구로 석사학위,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사회경제사 분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과 저서로는 ‘병자일기에 나타난 17세기 충주이안 지역의 농법’, ‘병자일기에 나타난 17세기 전기의 사노비’, ‘광무양안과 대한제국기 충남 문의군의 주막(酒幕)’, ‘조선 전기의 공녀(貢女)와 그 친족에 대한 시혜’, ‘19세기 충주지역 주막의 연구’, ‘조선지지자료’(충북지역 색인) 등이 있다. 청주대학교와 한국교통대학교에 출강했고, 현재 충북도 문화재전문위원과 충북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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