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와 사회구조에서 대 혼란에 가까울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아직 진행 중인 검찰개혁일 것이다. 그동안 몰랐던 많은 충격적인 일들이 밝혀지면서 저런 문제가 왜 이제야 밝혀지지? 그동안 언론은 왜 침묵하고 있었지?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내부고발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들이다.

검찰개혁도 내부고발이 없었으면 일반인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삼성, 한진 등 대기업, 정부기관, 종교집단 등의 비리는 대부분 내부고발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많은 시간의 고민 끝에 진실을 밝혀낸 내부고발자는 사회에서 격려와 박수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너무 나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일부는 절실하게 후회한다고 말하고 있어 무척 안타깝다.

대부분의 내부고발은 조직이나 사회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그들의 용기에 칭찬과 관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들 중 많은 이들이 심한 심적인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라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다른 기관의 내부고발자에게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도 막상 본인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는 다르다. ‘동료를 저버린 배신자. 조직에 먹칠한 골치 덩어리. 저 사람 때문에 생활이 더 고단해졌어. 별것도 아닌데 그냥 참으면 될 것을. 너도 잘못한 것이 없지 않잖아’라는 말과 시선은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한다. 그렇게 내부고발자가 지치고 힘을 잃어갈 때쯤이면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어느새 그는 외톨이가 되어 있다. 조직에서는 조직의 안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침묵을 요구한다. 언론에 소개되는 내부고발자나 공익제보자에게는 박수를 보내면서 정작 본인 조직의 내부 직원에게는 따가운 눈초리를 준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다. 두 분 모두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침묵과 내부고발, 어떤 선택이 진정 조직을 사랑하는 것일까? 양심에 따라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이 정말 조직에게 해를 끼치는 것일까? 내부고발은 옳은 것일까?

어떤 이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함으로 공동체를 지켜가자고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타락하고 쇠퇴해 가고 있는 줄을 그는 모르는 것 같다. 사랑할 대상은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내부고발이나 피해를 입고 고통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용서는 침묵함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가 죄를 고백하고 사과하고 그리고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써 용서가 완성된다. 영화 밀양의 주인공 신애는 아들을 죽인 범인을 종교의 힘으로 용서하려고 교도소를 찾아 간다. 그런데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며 웃고 있는 범인을 보고 미쳐버릴 듯한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교회를 버린다. 갈등 상황을 잘 못 처리한 전형적인 사례이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성경 말씀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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