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장 객주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소이다.”

채마전 복석근 객주였다. 복석근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 당나귀 귀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한창 북진도 장사가 잘되고 있는데 괜시리 청풍도가를 건드려 화를 자초할 일이 뭐가 있겠소이까? 그렇지 않소이까, 객주님들!”

장순갑이 복석근의 찬동에 힘을 얻어 다른 객주들의 동의를 구했다.

“그건 그렇소이다. 잘 타고 있는 불 쑤석거려야 꺼지기 밖에 더 하겠소이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이다. 이제 장사도 좀 되고 살만해지는데 왜 동티를 만든답디까?”

사람 좋은 어물전 김길성 객주에 이어 세물전 신덕기도 반대했다.

일곱의 상전객주 중 네 명의 객주가 최풍원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아직 의사 표명을 하지 않은 상전객주는 피륙전을 하는 김상만과 곡물전을 하는 박한달, 그리고 약초전을 하는 배창령 세 명이었다. 다수결이나 상전객주들만의 의견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객주들의 반대 의견에 최풍원은 내심 당황스러웠다. 혹여 다른 객주들은 그리 생각하는 것이 아닌데 자신만의 독단적인 행동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야, 이놈들아! 니놈들이 이제 살만해졌구먼! 등 따시고 배지 부르니 그냥 드러눕고 싶으냐? 이 놈들아, 배 창시가 등가죽에 가 붙었을 대를 생각해봐!”

김상만이 상전객주들을 향해 쓴 소리를 대차게 퍼부었다.

“그려, 저런 놈들은 굶어 뒤지게 내버려뒀어야 해! 지들이 누구 때문에 지금처럼 살게 되었는데 그 공도 모르고 벌써부터 반대를 하고 지랄이여!”

박한달도 김상만의 역성을 들며 나섰다.

“이봐! 우리를 공도 모르는 그런 놈들로 몰지 마. 공은 공이고 살은 살이여! 얘기즉슨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문제를 맹그냐 이 얘기여!”

“살은 무슨 놈의 살이여. 사겠지! 사도 몰라 살이라 하는 놈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뭘 알겄냐?”

장순갑의 말꼬리를 잡고 박한달이가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문자 좋은 놈이 관청 가서 붓자루를 잡지, 장마당에서 싸장사나 해먹고 사냐? 그래봐야 니나 나나 별 수 없는 장사치여!”

“장 객주 그건 아녀! 저 집안이 어떤 집안이여. 대대로 장사를 하며 남에게 주어들은 애기가 많어 서당이라곤 문턱에도 안 가봤지만 공부가 여간 높은가. 어지간한 훈장은 수인사도 못 올릴걸. 그러니 저렇게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두루뭉술한 김길성도 무슨 배알이 뒤틀렸는지 한껏 박한달을 비꼬았다.

“무식한 놈들은 저래서 안 되는 거여! 뭘 되게 시키면 배울 생각은 않고 어떻게든 다리를 걸어 넘겨뜨릴 궁리만 한다니께.”

“유식한 놈 또 지랄한다! 그렇게 유식한 놈이 생각 좀 해봐라. 지금 우리 북진여각에 뭔 문제가 있다는 말이냐? 잘 돌아가고 있는데,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을 미리 맨들어서 왜 문제를 맹그냐 하는 것 아니냐?”

장순갑이 당차게 대거리를 하며 캐물었다.

“…….”

박한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여러 객주님들, 이래서는 우리한테 백지 도움 될 게 없소. 그러니 서로 핏대 세우며 맞설 것이 아니라 조곤조곤 의견을 맞춰봅시다.”

약초전 배창령 객주가 중재를 하며 나섰다.

“배 객주 의향도 들어봅시다!”

복석근이 끼어들며 분위기를 누그려뜨렸다.

“대행수 얘기는 지금 당장 청풍도가와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길 우려가 있으니 우리도 미리 대비책을 생각해놔야겠다는 게 아니오?”

배창령이 객주들의 눈치를 살피며 최풍원이 한 이야기의 강도를 낮췄다. 그리고는 최풍원의 대답을 유도했다.

“배 객주 얘기가 맞소이다. 지금 당장 청풍도가와 싸움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분명 그자들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해올 것이기 때문에 우리 상전객주들과 함께 의논을 해보자는 것이었소이다!”

최풍원도 한 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동몽회원들이나 여각 사람들을 시켜 청풍도가를 감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숨겼다. 봉화수에게 밀명을 내려 북진여각 상권내의 객주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게 했다는 사실도 당연히 말하지 않았다. 장순갑을 의식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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